교사들의 불안과 초조

때 늦은 후회

by Aheajigi


자녀를 키우다 보면 큰 소리를 낼 때가 있다. 명백한 잘못을 고치기 위함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릇된 자녀의 행동을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갈 정상적인 범주의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녀 한둘을 놓고도 이런 것을 20명 넘는 꼬맹이들이 모여있는 교실은 어떤 성 싶은가?


여러 사건 이후로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교사들은 섣불리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들이 크게 번지는 상황임을 직감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다 간혹 잔소리를 하는 일도 있다. 통용되는 임계점을 넘어선다 싶을 경우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되뇐다. 더 참아야 했나? 못 본척할 것을 그랬나? 불안과 초조함이 스스로를 옭아맨다. 분명 가해 학생에게 잔소리를 한 것은 피해학생을 막기 위함이었음에도 말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벌어질 시끄럽고 지저분한 일에 얽힐 두려움 때문이다. 때늦은 후회만 오래도 반복한다.


콩 심은 데서 팥은 나오지 않는 법이다. 상식의 선을 넘어서는 행위를 아이가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는 것은 이것이 그 녀석이 속한 가정에서는 통용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아이 못지않은 양육자가 있음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교사의 불안과 초조는 바로 이점 때문이다.


일주일 넘는 병가를 낸 동료 교사가 있다. 싸움을 말리다가 아이에게 맞았단다. 교사가 잘못한 행동을 한 학생을 꾸짖는 것은 큰 사건이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학교란 곳에서 교사가 처한 현실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을 끌고 당기며 잘 가르치기를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다. 민원과 고발을 당할 일이기 때문이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다 한들 강 건너 불구경하듯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만 한다. 해결이나 보호를 위한 개입은 화만 불러온다. 늘 초조함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교사들이다. 그래서 출근하기 너무 버겁다. 화창한 날씨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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