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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여린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3)

더 깊은 나락 속으로

by Aheajigi

“탄아! 잘 가!”

“저희가 잘 키우겠습니다.”

“네가 탄이구나! 할머니를 위해 함께 열심히 기도하자꾸나!”

낯선 부부가 해맑게 웃으며 선한 표정으로 탄이를 맞이했다. 아저씨는 자신을 목사라 소개했고 한걸음 뒤에 물러서 있던 아줌마는 살갑게 탄이를 차로 안내했다. 할매를 위한다는 첫마디에 어쩌면이란 기대를 해보았다. 이대로라면 탄이의 마음이 열릴 듯 했다. 드디어 할매를 만나게 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식어버린 마음 저 끝에서 몽글몽글 올라왔다. 아련한 희망을 누리는 시간조차도 잠시 뿐이었다. 불과 몇 분 뒤 탄이는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아챘다. 차가 출발함과 동시에 부부의 웃음기 득한 얼굴은 사라지고 냉랭한 표정만 엿보였기 때문이다. 어디론가 향하는 차에 탄 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말 한마디 없는 무거운 적막감만 가득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차는 낯선 곳에 멈췄다. 나무가 잔뜩 우거진 숲길 끝에 제법 넓은 마당과 이층집이 있었다. 목사 부부가 차에서 내려 이층으로 올라갔고 탄이도 뒤따랐다. 잠시 지낼 방이라고 알려주며 문을 열어주었고 얇은 이불만 덩그러니 깔려 있었다.


탄이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웅크려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탄아! 할매 너무 찾지 말고 잘 살아야 혀!’

‘할매 왜 그런 말씀을 해요. 내가 요즘 찾아가지 못해서 그래요?’

‘할매가 꼭 지켜줄텨.’

한참 앉아있다 겨우 깜빡 잠들었는데 꿈속에서 보고픈 할매가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니 탄이 가슴에 불안함이 엄습했다.



탄이의 우려와 비관적인 꿈은 서서히 현실로 드러났다. 커다란 십자가가 달려 얼핏 보면 교회 같았지만 분명 달랐다. 탄이에게는 목사라 소개한 아저씨를 1층에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구원님이라 불렀다. 이곳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1층 공간을 교회가 아닌 성전으로 명명했다. 성전이란 곳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탄이는 평소와 달리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목사와 그의 아내는 사람들 앞에서는 탄이를 하나하나 살뜰하게 챙기는 듯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 목사 부부뿐만 아니라 그 자녀 현이까지 거짓 가면을 얼굴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지켜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탄이를 대하는 행동과 표정이 전혀 달랐다. 환한 미소와 정감 넘치는 말투까지 탄이를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듯 선행 자랑질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마치 배우처럼 연기를 했다. 이들의 자녀인 어린 현이도 형이라 부르며 잘 따르는 시늉을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가족은 탄이를 교회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함이 분명했다. 모임이 끝나고 신도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목사 가족은 사나운 맹수 같은 본 모습을 드러냈다.

“쟤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져!”

“아빠도 기분이 지저분해지네!”

“여보! 언제까지 저런 애를 데리고 있어야 해?”

“꼴도 보기 싫어!

“야! 너 오늘부터 지하에서 지내. 더럽고 냄새나니까 허락 없이 2층으로 올라오지 말고.”

“썩 사라져!”

한바탕 포효한 가족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고 탄이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녹이 슬었는지 문이 열리면서 요란하게 찌그덕 거렸다. 문지방을 넘어서니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어 비좁았고 낡고 오래된 형광등 때문에 실내는 어두침침했다. 손바닥만 한 창문은 문틀에 못질을 해두어 열수 없었고 코를 찌를 듯한 곰팡내가 자욱했다. 방이라기보다 창고에 가까웠다. 여기서 잠을 자야 한다 생각하니 암담했지만 자리를 만들어 낡은 이불 몇 개를 겹겹이 쌓아 펼쳤다.


“야! 저녁 밥!”

누군가 내는 소리에 계단을 오르자 이가 나간 쟁반에 음식이 대강 담겨있었다. 분명 삼겹살 냄새가 집안 전체를 뒤덮었지만, 탄이에게 돌아오는 반찬이라고는 차갑게 식은 국과 신 냄새 가득한 김치뿐이었다. 이 가족은 수시로 새것같이 빳빳한 옷을 입었지만, 탄이는 신도들이 건넨 꼬깃꼬깃한 헌 옷과 얼룩진 신발 밖에는 없었다. 생명을 이어갈 최소한의 것만 주나 싶었다.

그럼에도 탄이는 이런 모든 것에 크게 괘념치 않았다. 할매가 계신 곳으로 어떻게 해서든 가보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세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생채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버려진 페트병 몇 개에 물을 채웠고 찬밥을 동그랗게 뭉쳐서 주먹밥 서너 개를 준비했다. 떠날 날짜와 차를 얻어 탈 방법, 그리고 목적지 위치까지 계획이 차근차근 완성되어갔다. 이제 곧 할매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기대하니 이따위 핍박은 정말 대수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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