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탄이가 창고 같은 방으로 들어서려 하자 목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듯 전했다.
“야! 너희 할머니 죽었데!”
“네?”
“혹시 찾아가려 해봐야 소용없어! 벌써 장례식도 끝났으니!”
“정말이에요?”
“화장해서 바다에 뿌렸다니까 다시 찾아갈 생각 말아! 꼭 목사님이라고 불러! 실수하면 크게 혼날 줄 알아! 알았어?”
할매를 찾아 달아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거짓말인지 아니면 진짜 사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돌아가셨다는 한마디에 희망의 불씨가 꺼져 버렸다. 조각조각 위태롭게 붙어있던 탄이의 마음이 가루처럼 으깨져 버렸다. 탄이는 그 자리에 넋을 놓고 한참을 서 있었다.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냥 눈뜬 시체처럼 누워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지만 탄이의 텅빈 가슴은 도저히 다잡을 방법이 없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탄이는 목사 부부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꾸역꾸역 낯선 학교로 들어섰다. 헝클어진 머리와 바짝 말라서 갈라진 입술, 남루한 옷과 퀭한 눈두덩이까지 탄이의 피폐한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교실에 있는 또래들 누구도 탄이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다. 수업이 진행되었고 쉬는 시간이면 재잘재잘 소리가 들려왔지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탄이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방학 끝나고 피곤했을 텐데 오늘 모두 고생했다. 집으로 잘 가고 내일 보자!”
“와~!”
아이들이 썰물처럼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간 뒤 탄이도 터덜터덜 학교를 걸어 나왔다.
“꼬르륵~”
이런 와중에 눈치 없는 탄이의 배는 학교 앞에 줄지어 늘어선 분식집의 떡볶이 냄새에 요동쳤다. 나흘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탄이의 침샘이 왕성하게 반응을 시작하고 말았다. 눈동자까지 떡볶이에 고정되어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꾹 찔러보지만, 역시나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다. 또래들이 먹는 떡볶이를 부러운 듯 넋을 놓고 바라보며 어정쩡하게 걷다가 그만 같은 반 철구와 부딪히고 말았다. 이제 막 한입 먹으려던 철구의 컵떡볶이가 바닥에 거꾸로 떨어졌다. 탄이가 황급히 컵을 들었지만, 종이컵 안에 들어있던 떡은 모두 땅바닥에 쏟아지고 말았다.
“야! 뭐하는 거야!”
“미안해”
“미안하면 다야! 물어내!”
철구는 버럭버럭 화를 내며 난리를 쳤고 탄이는 미안함에 떨어진 뜨거운 떡볶이를 손으로 주워 컵에 옮긴 뒤 다시 철구에게 건넸다. 탄이의 손은 고추장 양념 범벅이 되어 있었고 종이컵 안 떡볶이는 흙투성이였다.
“나보고 쓰레기를 먹으라고?”
음식 쓰레기를 다시 주면 어쩌자는 거냐며 더 크게 고함치고 따지는 철구에게 탄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철구는 탄이가 종이컵을 들고 있던 손을 밀쳐 버렸고 컵에서 튀어나온 떡볶이가 탄이의 옷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