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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y 17. 2024

Come down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이랜드 물류창고에서 알바로 일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재고의류 처분을 한다고 일을 하라 해서 동원되었다. 가판에 쌓인 물건을 두고 마네킹 옷을 벗겨달라는 어이없는 진상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옷 자체는 라인이 들어가 있지 않아 보이고 마네킹에 입혀진 옷은 허리가 잘록해 보여서 그런 것을 모르지 않았다. 사실 그 옷은 허리 부분을 핀으로 고정했기에 그리 보였을 뿐 가판대에 쌓여있던 옷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잘 보이기 위해 만지고 소품으로 꾸며진 상태였을 뿐이었다.


교사에게 학부모 공개수업도 이와 비슷하다. 잘 준비하여 최대한 근사하게 보여주는 연극 같은 시간이다. Showcase나 DP 된 옷처럼 말이다.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점점 교실에서 멀어져 가는 한 아이에게 신경이 꼽히다 보니 사실 이 수업 한 시간이 어찌 되든 중요하지 않았다. 울다웃다를 반복하던 녀석이 오늘은 책상에 앉아 웃고만 있다. 기분이 한껏 좋아 보여 내 마음도 안심이다. 막상 학부모 공개수업이 시작되니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자리에 앉으라 몇 번 말하고 뒤돌아서 수업을 하다 보니 이제 땅바닥에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한다. 이 아이에게 자리에 앉으라 계속 말하다 보니 수업 흐름은 계속 끊긴다.


 모둠 활동을 시킨 뒤에 돌아다니며 코멘트를 하는데 또 다른 녀석은 계속 백허그를 한다. 엄마 오셔서 지금 보고 계시는데 괜찮겠냐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바닥에 앉거나 돌아다녀도 제지를 하지 않는다 판단하니 백허그도 괜찮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수업에서 지켜야 할 선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아이들은 의견 충돌로 인한 툭탁거림에 울고 삐지고 난리도 아니다. 24년 공개수업 중 이런 장면은 처음이기에 참 낯설었다. 화가 날 법도 했지만 마음은 차분했다.


제대로 망했다 싶으면서도 신경 쓰이는 그 녀석이 계속 웃고 있어 다행이다. 내 수업 한번 망친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다. 가정에서 온전하게 케어받지 못한 저 아이에게 교실도 지옥 같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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