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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May 26. 2024

이 또한 지나가긴 하는데

흉터는 깊이 박힌다.


시간이란 것이 굽이치고 내리 처박히는 최악의 상황을 지나가게 하는 건 맞다. 그리 버티면 또 살아가게 되기는 한다. 꾸역꾸역 말이다.

그렇지만 다시 예전으로 완벽하게 돌아오지는 못한다.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듯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보이는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새살이 돋아나 흉터만 남긴 채 아물겠지만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나 기억까지 그러하지는 않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했다."


삶의 경험치가 쌓이면 문제 대처 시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살아온 시간만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례를 끌어다 현재 상황에 대입하는 소모적 정신노동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들의 기막히고 신박하며 징글징글한 대응 전략 때문에 이런 대비가 무용지물인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연륜이 늘어갈수록 발생한 사태가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속도 모르는 관람자적 시점에서는 이런 대처 능력이 지혜로 보일지 모르나 당사자는 현재의 난처함에 더해 과거의 암울했던 엄청난 양의 기억 들추기를 다시 해야만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다."


이 또한 지나가겠거니 진정 태평하려면 망각능력이 극대화되어야 한다. 현재의 업이 유일한 생명줄이 아니어야 한다.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식구가 없을 때나 가능한 소리다. 이리 자유로운 영혼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다 잘 될거야!' '괜찮아지겠지!' 영혼 없는 위로처럼 모든 게 지나간단 소리도 립서비스일뿐이다.


그냥 태연하게 지나가는 일들은 별로 없다. 조심하고 대비한다 해도 사건은 생기기 마련이다. 피할 수도 없다. 대응할 뾰족한 수가 없을 때도 있다. 상처의 깊이와 폭을 줄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삶은 생채기의 연속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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