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바라보는 카테고리

누적된 경험적 분류

by Aheajigi

교사가 점쟁이는 아니다. 선구안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교사로서 나만의 분류를 하는 것은 선입견임도 분명하다.

학생들을 첫인상 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예측할 예지몽이 있지는 않으나 그리 살아갈 듯 그려지기는 한다. 25년간 지켜본 경험에서 비롯된 데이터일 뿐이다.


학생을 보고 있자면 여러 잡념이 생길 때가 있다. 성실한 녀석들, 소질이 보이는 녀석들, 모든 역량을 사건사고에만 쏟는 녀석들, 누구와 싸울까만 고심하듯 싶은 녀석들, 그리고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이 없는 녀석들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학생들을 범주화시킨다.

의도한 것은 아니기에 어떤 카테고리에 넣을지 고민하지도 않는다. 25년 경험이 카테고리를 자생적으로 만들었고 범주화시키는 작업 또한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어쩌면 직업병일지도... ...


눈앞에 보이는 학생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확정적으로 예단하지는 않는다. 미래는 나도 모르는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 삶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길과 굴곡이 훤히 보이는 녀석들은 또렷이 있다. 스스로 그런 길이 친숙한 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달라짐이 없다. 내 길이 옳다는 강력한 신념이 있는지는 몰라도 전혀 말릴 수 없다. 이들의 양육자 또한 말이 안 통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적정선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성장하는 녀석들도 있다. 점점 속도가 붙는 것이 보인다. 잘 자란 녀석들도 있고 계중에는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상치보다 자라지 않기도 했다.


긴 삶의 길에서 난 이 녀석들에게 잠깐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다. 나아가는 방향성에 보탬을 주고자 하지만 방향이 어긋났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인정할 뿐 억지로 끌어당기지는 못한다.


어찌 되어갈지 그려지긴 하지만 당사자에게 내뱉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는 든든한 긍정적 시그널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주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나서 의사나 변호사나 성공한 기업가가 될 수도 없다. 모두 그런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잘 굴러갈 리 또한 없다. 누군가는 궂은일을 해줘야 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 또한 꼭 필요한 것이 사회이다.


내가 만든 카테고리 자체는 사실 의미가 없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편하고자 만든 허상이다.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범주에 속한다 해도 아이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수는 미래를 뒤흔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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