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꼬맹이들의 작은 사회

싱숭생숭

by Aheajigi

새 학기를 앞두고 부모는 걱정, 아이는 싱숭생숭할 것이다. 예전에는 사전에 다음 학년도 반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리 공지해도 가나다로 반이 표시되어 있고 개학 직전에 임박해서야 알려준다.


"왜?"

반편성과 담임 배정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반을 알려주면 바꿔달리는 민원이 빗발친다. 같은 반이 된 다른 아이 때문일 경우도 있고 부장 직함을 단 교사를 피하기 위함일 때도 있다.

실상 교사들 상당수도 해당학년도 업무분장을 받고 나서야 내가 몇 학년 몇 반 인지를 뒤늦게 안다.


"작은 사회"

해마다 연말이면 교사들은 내년 반편성에 적잖은 신경을 쓴다. 사고뭉치 거나 갈등 내지는 폭력을 주도하는 학생들을 고르게 분포하기 위함이다. 한 곳에 쏠릴 경우 발생할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지만, 결국 이건 폭탄 돌리기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리저리 나눠놓지만 결국 문제는 터지게 되어있다.

선한 사람, 평범한 사람, 악한 사람이 뒤섞여 사회가 흘러가 듯 교실 또한 마찬가지다. 차이점은 규모가 작고 몸집이 작다는 것뿐이다.

부모들의 걱정과 학생들의 싱숭생숭함은 바로 여기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솎아내지 못함의 한계"

능력의 차이도 교육 입장에서는 큰 난제다. 하물며 이것이 행실의 차이라면 교육을 붕괴시킨다. 갈등 유발자들이 교실에 있는 한 교육은 불가능에 가깝다. 매번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생활에 위협을 가하는 마당에 어떤 학습을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사회처럼 격리를 시킬 수 없는 교실에서 이 모든 압박을 학생들은 온몸으로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육이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건만, 교육으로 모든 것을 감싸라는 현실성 없는 논리를 앞세운다.

제대로 단죄하지 않으니 교실은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교실이 개차반으로 흘러간다면 학생 입장에서 방법은 이것뿐이다. 버티거나 달아나거나!

난리를 치는 학생이 먼저 떠나는 일은 상당히 드물다. 결국 멀쩡한 아이들이 전학을 통해 벗어난다.


누구와 만나서 한해를 생활할까에 대한 싱숭생숭함이 힘들거나 버거운 현실이 되었다면 전학을 고려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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