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_ 조엘, 댄, 비에른의 한국 방문을 축하하고 환대합니다.
"조엘,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잘 봐봐, 어디 적혀 있을 거야. 댄"
"응 저기 있는 것 같은데, 이쪽인가? 아.. 저쪽인 것 같기도 하고.. "
"비에른! 내 생각에는 노선도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아. 저기 벽에 가보자."
"혹시 도움 필요하신가요? 지나가다 잠시 봤는데 길을 헤매고 있으신 것 같아서요."
"오 반가워요. 지금 이촌역에 국립중앙박물관 가는데, 이 방향 맞나요?"
"맞아요. 저도 이쪽에서 타니까 내려야 할 때 말씀 드릴게요.
이촌 역은 그렇게 멀지 않아요. 같이 가요."
네덜란드에서 이름 모를 방문객 세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름은 조엘, 댄, 비에른. 이름은 세 글자가 채 되지 않는데 키는 월척이라고 해야 할지.. 관우 장비 유비와 준할 만큼 장대하였다. 적어도 190cm.. 승강장을 헤매는 세 사람을 붙잡은 나는 숱한 경험에 의거하여 단도직입적으로 필요한 말만 골라 그들의 시간을 아껴주고자 했다. 비에른의 삼촌이 한국인과 결혼 한 이후로, 십 수년 동안 줄곧 숙모로부터 한국 얘기를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중간에 들을 수 있었다. K팝, K무비, K드라마, K푸드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한국 문화를 이해한 경험이 있는 비에른은 나머지 두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 같다. 비에른이 한국 땅으로 두 친구를 데리고 왔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그를 통해 두 친구는 미지의 나라 대한민국에 발을 붙이게 되었다. 만남이란 이렇게 소중한 것이다.
그들의 나이는 모두 스물일곱, 세 명 모두 의사지만 전공이 모두 달랐다. 한 명은 정신과(psych·iatry) 나머지 한 명은 외과 의사(surgeon), 마지막 한 명의 전공 명은 결국 못 알아 들었다. 추가 질문 없이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금쪽같은 시간을 전공 명을 이해하기 위해 쓸 수는 없었다. 차차 알아갈 복안이 있었기에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에른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 큰 것 같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국에 애초에 올 일이 없을 테니까라는 질문에 나머지 두 친구들이 끄덕인 걸 보면 말이다.
"앞으로 일주일 머물 예정인데, 서울 안에서 어디를 가면 좋나요? 가볼 만한 곳 어디 추천해 주세요."
지방 순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말에, 딱 한 곳을 추천해 줘야 한다면, 잠실 타워를 가서 전망대에 오르는 걸 추천해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남산 타워는 산 높이에 타워 높이를 다 더해도 480m 남짓, 잠실 타워는 555m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부심이 있는 나로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재빠르게 답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잠실은 내가 가장 오래 있었던 근무지이기도 했고, 석촌 호수는 수백 번을 걷고 또 걸었던 나의 호수와 같았으니까. 그 앞에 있는 잠실타워를 추천할 만했다.
이전 상사 중에 네덜란드인이 있었다. 그의 키 역시 190cm 정도였고, 그는 늘 자기 키는 medium 보다 약간 큰 정도라 강조했다. 오늘 만난 세 청년 모두 190cm을 상회하는 똑같은 장신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똑같은 질문을 그들에게 던져 보기로 했다. 가장 작은 친구의 키는 대략 185cm을 넘어 보였는데, 자기는 네덜란드 남성 평균 신장이라면서.. 네덜란드인이 키가 큰 이유를 묻는 나의 질문에 그건 바로 "치즈" 때문이라는 즉답을 내놓았다. 어차피 지금 알아도 소용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정말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뿔싸! 삼십 년 전에 들었어야 할 내용을 너무 일찍 물어보았다.'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내 아들을 위해서 물어보는 거니 괜찮아라고 고쳐 생각했다.
기쁨이 생일이 넉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열두 살 생일 선물로 대용량 치즈를 예쁘게 포장해 줘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 그들이 내게 여러 질문을 물어왔다. 다시 내 순서가 왔을 때 단시간 동안 경험한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았다.
"복잡하고 커다란 대도시 서울은 일단.. 교통이 무척 편리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이 무엇보다 맛있는 것 같아요."
하루 만에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바비큐 파티 하려고 하는데, 무슨 고기 사 먹으면 좋을까요?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가 뭐죠? "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한우를 사라 했다. 적절한 다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 주에는 일본을 가는데, 그전 일주일 동안 경주와 부산에 가는 게 무척 기대가 된다 했다. 아마 부산에서 일본으로 곧장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내일의 행선지는 바로 DMZ..
내가 갔던 금강산에 대해 말해줄까 하다가 사설이 길면.. 지루해할 것 같아 대화 주제를 이내 바꿨다.
조엘, 댄, 비에른. 이름마저 한 번도 발음해 본 적 없는 생소한 유럽식 이름, 그리고 모습으로는 결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유럽 사람들과 대화는 색다르고 즐거웠다.
Q.
만약 지하철 승강장을 지나는 순간 내가 그들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면,
내 평생 그들을 다시 만난 수 있었을까?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 그들을 다시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
Q.
그들이 무엇 때문에 지하철 승강장에서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내가 과연 그들이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습으로 알 수 있었을까? 아니.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Q.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어디인지 자세히 묻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들이 하루동안 어디를 다녀왔는지, 그리고 다시 어디를 가게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있었을까? 아니.
퀘스천 마크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P.P.P
분명한 목적의식(purpose)과 우선순위(priority), 관점(perspective)을 가지고 올바른 질문을 던졌더니, 그에 맞는 적절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핵심 질문을 던졌더니, 단 시간 내에 상대방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
내가 만난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였다.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아시아에서 만난 새로운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더욱 따뜻하게 대하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좋은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눈에 서양 사람들이 얼추 모두 비슷하게 생긴 것처럼, 그들 눈에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해 보인다 했다.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두는 저마다 다른 우주를 가슴에 품고 산다. 내가 만난 세 사람이 모두 확연히 다른 우주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내가 묻지 않았더라면,
나아가서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다시 만날 날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두자 말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서로를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파편화된 기억은 오래 남지 않고 어느 순간 기억의 별천지 속으로 꼭꼭 숨어 버릴 테니까.
대화 중에 나의 정체성을 묻길래, 나를 '작가'라 소개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활짝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쓰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가장 소중한 날들을 기억한다 말해주었다.
그것이 아픈 일이든,
행복한 일이든,
울적한 일이든.
내 마음에 남는 것이면 모조리 남겨두고 싶다고 말했다.
만약 세 사람 모두가 허락해 준다면, 우리의 짧은 추억을 나의 독자들에게 사진과 함께 나누고 싶다 말했다.
"Sure, why not?" (물론이지. 안 될게 뭐야?)
조엘, 댄, 비에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내게 자신의 폰 번호를 주었다. 네덜란드에 오면 반드시 연락하라고.
0031-16--------
각 사람이 가진 선의와 내면의 진실된 태도, 겉으로 드러나는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마침내 완전히 통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를 항상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던 것 같다.
나는 나를 사랑하며, 나의 삶의 언저리에 머물다, 내 마음 중심까지 찾아와 주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고만 싶다. 내가 받은 사랑이 그러하기에. 사랑은 언제나 사랑을 불러오고, 사랑만이 오직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신과 훈남 의사 친구는 저를 위해서 무릎을 완전히 굽혀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신과 의사 답죠? ㅎㅎ 저 친구가 가장 컸던 걸로 기억합니다~ 배려 훈남. 사진 게재 허락 받고 올립니다. 한국에서 꽤 알려진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했더니 좋아했답니다.
이 일은 오늘 낮에 있던 일입니다 ^^ 밤 열시에 행복하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