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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Apr 06. 2024

6화_본 어게인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삶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우리 기쁨이 안녕!


오늘은 네게 아빠 어린 시절 이야기를 줄 거야 네가 아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앞으로 닥칠 그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낼 거고 지나갈 거란 사실을 이 시간 말해주고 싶어


이 글은 아빠가 걸었던 그 방식 그대로 따라오란 뜻에서 쓰인 게 아니야 이 글은 아빠에게 주어진 쓰라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 냈는지 그 과정을 담은 글이야 그래서 처음엔 재미가 없을 수 있고 별 관심 없을 수도 있어 그러나 끝까지 따라오면 아빠 마음을 알아차리게 될 거야


아빠가 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을 남기 그토록 애를 쓰는지 그 출발부터 우리 함께 이야기해 나가자









전엔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결혼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그런 질문에 관심 없어


가끔 스치듯 지나치고 말았다


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기엔 그땐 너무 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질문을 하게 만드는 트리거(촉매제)가 없었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그날도 평소처럼 펑펑 울며 기도 중이었고 예수는 내게 다가오셨다


그날 기도 가운데 예수를 만난 이후,


나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내 안에서 어떤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았다   



화학적 변화, 즉 물질이 그 자신 또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본래의 성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로 변하는 현상이 내게 일어났다.


나는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고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되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왕따 경험이 그 트리거가 되었다.


 이후 밤마다 찾아온 악몽은 내게 전혀 다른 인생 질문던졌


눈에 보이는 사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알고 싶게 만들어버렸




비로소 궁금해졌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삶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본어게인(Born Again)


생소한 단어다. 본래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없는데, 본 어게인이란 그 어감 자체로 뭔가 잘못된 듯싶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의미로 들어가면 보다 나은 이해를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는 개인들이 경험하는 영적 태어남이나 새로움을 본어게인이라 한다.


이 개념은 성경 신약 중에서 특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내용에서 출발한다. "참으로 참으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새롭게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리라"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장 3~8절)


이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개인들이 내면적 변화를 겪으며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고, 내면적 성장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영적 다시 태어남은 회개를 통해 이루어지며, 구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예수를 주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새롭게 태어남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서, 복음주의 기독교의 중심 원칙으로 여겨진다.


이는 깊은 개인적 삶의 변화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본보기를 따르는 헌신을 통해 나타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버지귀금속 세공 기술자셨다. 반지, 귀걸이, 목걸이를 디자인하여 금, 은, 에머럴드 같은 보석을 다시 가공하고 누구나 사고 싶게 만드는 세공 일을 하셨다. 1980년 대 중반 아버지는 세공을 전문적으로 배워 일하기 위해 이웃나라 일본으로 건너가셨다



자연스레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고 중간에 계속 들어오셨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버지는 보통의 아버지와 다른 내겐 이방인 같은 낯선 느낌의 존재였다. 오래도록 우리는 어색한 부자지간으로 지냈다


사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자세히 나지 않는다. 일본에 살면서 여러 사정으로 자금사정이 좋지 못해 한국에 있는 우리 세 가족은 늘 경제적 어려움을 면치 못했고 가끔 국내에 들어오실 때 일본 초콜릿을 사다 주시곤 했던 게 가장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여름

아버지가 국내에 계시던 시기였다


집에 왔더니 어머니가 안 계셨다

 

어디 가셨지?


저녁 늦게 잠시 들어온 어머니에게 그제야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교통사고가 났다는 거였다.


대형 사고였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고 두세 달 정도 입원 하셔야 했다.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참으로 다행이었다

 


당시 거칠고 강했던 혈기 많은 아버지를 많이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앞에 서면 방금 하려던 말도 안 나오고, 당황하고 순식간에 해야 할 말을 잊어버리곤 했다. 대화가 많지 않았고 심부름 위주의 대화였다.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들으면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화나면 누구도 말릴 수 없었던 다혈질 아버지 셨기에, 온순한 기질과 극내향적인 나는 언제나 내 미련함을 탓하며 늘 주눅 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기도 중에 갑자기 떠올랐던 것이다




아버지가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삶과 죽음이라는 명제를 나도 모르게 온몸으로 감싸 안았단 사실을 기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누가 뭐라 하면 말대꾸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심약한 나였지만, 그 무서운 아빠를 마음으로 깊이 사랑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아버지도 나름의 최선으로 살아왔사실을 나중에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 사이에 박고 오래 기도하던 나,


 어리고 여린 내 가슴을 때리며 기도했던 시간,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밤이면 밤마다 괴롭히는 악몽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당시 그간 앓던 축농증까지 심해지면서 나는 커다란 두통마저 겪어야 했고 가는 곳마다 휴지가 수북이 쌓여갔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하기 어려운 상황였다


날 둘러싼 주환경이 참 싫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수학 학원을 다니고 싶었는데 우리 집 형편에는 어림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가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반 친구들은 나이키를 신고 다녔지만, 나는 늘 멀리서 구경만 하고 부러워했다. 뭐 신발이야 아무거나 신으면 되지 하면서도 늘 애들 발 쪽으로 눈길이 갔다. 마음이 시렸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갈 시기가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나와 동생을 앉히고 말씀하셨다.


없는 형편이지만, 너희 미래를 위해 너희가 태어나고 오랫동안 아주 조금씩 모아 온 적금을 깨서 헌금을 드리려 해. 하나님께 너희 이름으로 드리려 한다.
네 엄마, 뜻대로 하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깊이 생각했다. 어머니와 그 일에 대해 상의를 하고 며칠 후 입학할 고등학교 선배들의 졸업식에 찾아간다


쭈뼛쭈뼛 머뭇 거리길 1시간..


졸업식이 끝난 운동장을 계속 돌며 기도를 드렸다. 학교 전체를 몇 번씩 돌고 돌면서 망설였는지 모른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시도를 하는 것이었기에 기 없던 난 인파로 가득한 운동장만 계속 돌고 있었다


싸한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보면 어떡하지, 졸업식 이 좋은 날 왠 모르는 애가 와서 귀찮게 하느냐 핀잔을 들을 것만 같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나와 사이즈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형들 세 명을 지목하곤, 다가가 대뜸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인 후배 현재(가명)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게 형 교복을 물려주실 수 있을까요?
요즘 세상에 이런 아이도 있구나. 그럼 줄 수 있지, 우리 집으로 따라오렴. 아줌마가 다려서 줄게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세 집 각기 다른 형들의 부모님으로부터 교복 세 벌을 선물로 받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왠지 모르게 모든 게 앞으론 잘 풀릴 거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머니를 부지런히 찾았다.


어머니 어머니, 저 교복 얻었어요. 이제 교복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 아들아, 고맙다
우리가 얘기한 대로 주님이 교복을 주셨구나

주님께 감사하자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 수업료를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친구들 앞에 드러내 놓고 말할 수가 없어, 나는 언제나 누가볼세라 조용히 교무실로 향했고, 담임 선생님과 면담 후 꾸준히 그 혜택을 받았다.  


당시 우리 학교엔 급식 시설이 있었다. 친구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무리 지어 급식실로 갔지만,


나는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어느 날은 도시락을 못 싸가서 운동장 수돗가에서 물을 틀어 마시고 울며 기도한 적도 있었다. 그날은 어떤 영문인지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고 나는 수도꼭지에 입을 가져다 대고 대충 점심을 마무리했다.


우리 집은 왜 이리 어려울까?

왜 이렇게 오래 힘들기만 하는 걸까?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내내 그 힘듦은 사라지지 않았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인생이 바뀌는 사건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 4~5월로 기억한다.

다니던 작은 교회에 공고문이 붙었다

다가오는 5월 한 달, 우리 교회에 전국 전도왕들을 모셔서 예배 및 간증 집회를 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잔잔했던 마음의 강에 파문이 일었고

커다란 호기심이 일었다


전도왕


생소한 단어였다


그 전도왕들은 교회를 방문해 본인들 책을 소개할 만큼 전국적으로 꽤 알려져 있는 유명한 분들이었다


3-4주 동안으로 기억되는데 그 간증 예배 시간은 내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가슴 깊숙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그것, 그분들은 자신들이 몸소 겪은 경험을 들어, 그 본질을 자세히 소개해 주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삶의 목적을 성경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 실제 경험을 계속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 삶, 거듭 난 삶, 복음을 전하는 삶, 따라오는 기쁨과 행복의 삶


고등학교 2학년 숫기 없이 조용했던 내게는 너무나 매력적인 이야기로 들렸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은혜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시점을 전후해서 나란 인간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이 다녀 간 얼마 후부터 나는 교회 전도지를 들고, 교회에서 배운 사영리(기독교 믿음 소개 책자)를 들고 교회 근처 아파트 촌을 혼자 돌아다녔다.


띵동 띵동~



15층부터 1층까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방식으로 초인종을 누르고 , 문 건너편에 계신 어른들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현재라고 합니다. 여기서 5분 떨어져 있는 교회 학생부 소속이고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다름 아니라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문을 열어 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다행히 1990년 대 후반에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지금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게 2학년 남은 시절을 매주 전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근처 아파트 촌을 다 돌았고, 그 다음엔 자신감이 생겨 동네 시장을 다 돌아 다녔다. 그 후에는 근처 지하철 역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영리를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소개하고, 영접 기도를 한 분들은 교회로 인도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지하철, 시장 전도는 30대 중반까지 진행 되었다. 


매번 만나는 분들이 다 처음 보는 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을 해야 했고, 계속 새로운 경험이 쌓여 가면서 내 성격은 달라져 갔다.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고, 당당하고 활력있는 모습을 띄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 교회로 나오게 되었다. 그분들은 행복하다 말했고 그 모든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내 맘을 채웠다


고3 시절엔 어머니의 권유로 온 가족이 새벽 기도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4시 반이면 어김없이 봉고차를 타고 20분 떨어져 있는 교회를 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1년 동안 4시 정도면 깨야 했다. 동생은 언제나 잠이 덜 깬 채로 교회를 갔고, 교회에 가서도 계속 수면 중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 터지는 따뜻하던 시절이었다.


행복한 시절 가운데 내 마음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학교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 학교와 붙어 있는 초등학교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더 놀라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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