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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Apr 09. 2024

7화_혼수상태_어머니

따뜻했던 고3시절, 그러나 다시 암울해져 버린 캠퍼스 1학년

안녕! 얘들아~ 나는 고등학교 3학년 형, 이름은 현재라고 해~
너희들 피구 하는 모습이 너무 신나 보이고, 보기 좋아서 응원해주고 싶었어~
다치지 않게 조심히 놀아라
형~ 형도 끼워 줄까요?
응? 나? 난 괜찮아~ 나는 너희들과 키가 다른 걸~
내가 껴서 하면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하지~
아니요~ 더 재밌을 거 같은데요~ 친구들한테 물어볼게요~
친구들이 너무 좋데요~ 다들 같이 피구 하재요~
같이 놀아요~! 형~ 부탁이에요~


그럴까?
오늘 한 번 같이 놀아볼까~
그렇담, 어떻게 하면 피구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 알려줄게~ 잘 봐라

좋아요!! 재밌겠다~ 앗~싸~!






더 놀라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건물은 초등학교와 한 공간 안에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미음(ㅁ) 자를 대각선으로 조각 내놓은 모양으로,

그 가운데 아이들이 뛰어노는 주차장 같은 공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거기서 피구나 축구, 고무줄놀이 등을 즐겼다


쉬는 시간마다 언제나 들려오는 아이들 함성소리,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이들은 언제나 시끌시끌했고 후 수업 시간 누가 복도 쪽 창문이라도 열면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아이들의 기분 좋은 시끄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릴 만큼 가깝게 붙어 있었다




고3 시절, 새벽 기도를 마치면 교회 봉고차는 언제나 학교 근처에 섰다 학교 도착시간은 언제나 새벽 6시 반 전후, 교에서 가장 빨리 학교 문을 통과하는 학생이 나였다

 

교실 앞 제대로 닦이지 않은 지저분한 칠판을 깨끗이 닦고   

복도 쪽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켰다 나만의 루틴이었다


그러곤 창문 너머 서 있는 푸른 사철나무를 내려다보면 언제나 기분이 상쾌했다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정말 그림 같았다

 

그리곤 같은 반 애들이 올 때까지 언제나 내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었다

주로 잠언을 읽었지만 한 해 동안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어 내려갔다


요새 말로 미라클 모닝이었다

그 시절 내 마음속엔 형언할 수 없는 희망과 기대로 가득했다

 


복도 창문 너머 초등학교 건물이 내려다 보였다

아침 9시 즈음이 되면 등교하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이미 영혼이 무거워질 때로 무거워진 고등학생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영혼을 그대로 아직 보전하고 있었다

세상의 거친 파도를 아직 맞기 전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더 보호받는 존재였으면 하고 바랬다 



내 별명은 광신도였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날 싫어해서 붙여준 별명은 아니었다


하기사 그럴 만했다. 매일 아침 학교에 오면 쪽 성경을 보고 있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교회를 다닌다 하니 광신도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학교는 6시 반에 오고 기회가 되면 교회 이야기 꺼내는 친구였으니 말이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그래도 싫어하지 않았다



당시, 모두들 어느 대학에 갈지 거기에 마음이 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강남 8 학군과 거리가 멀었지만 SKY를 매년 50명은 가볍게 보내는 학교였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고 의욕이 넘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유수한 전통과 의욕적인 학생들, 그 보다 더 의욕적인 선생님으로 가득했던 우리 학교는 산 꼭대기에 위치해 외부 사람들에겐 절간으로 불렸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 길이는 3 cm를 넘을 수 없었고 염색을 하거나 교복 바지단을 줄여 입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손수건을 안 가지고 다니면 교양 없는 사람(barbarian)이라 지적을 받을 만큼 예의를 중요시하던 문화도 있었다.


친구들에게 전도를 하던 어느 날부터 초등학교 동생들이 눈에 밟혔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기 선택이지만,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세히 들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생각했다

불편하지 않도록 때와 장소를 잘 가리면 된다 생각했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전하려 한다면 충분히 들을 거라 확신했다


사영리(기독교 믿음 소개 책자)를 통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전에 교회로 향했기에 내겐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그분들이 직접 가겠다 했고, 교회에 다니면서 내 삶이 달라졌다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과일 깎는 과도는 누구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훌륭한 요리를 손질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거나, 흉기가 될 수 있다 생각했다.


당시 3학년 학생으로서 내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나 자신에 부끄럽고 싶지 않았기에 열심히 공부했다.  


일요일 고3 학생은 학교에 나와 9시~5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이름은 자율학습이었지만, 필참이었다. 고3 학생이라면 예외로 빠지는 학생은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고 오래 기도로 준비했다


일요일은 나에게 예배와 함께 쉼을 갖는 날이었다. 1년만 참고 열심히 공부하면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을 거라 모두들 말했지만, 그 보다 내게는 현재(here and now)가 중요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단순한 예식이 아닌 지나온 한 주를 정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타임오프였다. 비단 공부를 일요일에 하지 않아도 다른 시간에 집중해 대학에 갈 실력을 갖춘다면 결국 가게 될 거라 믿었다.


담임 선생님과 오랜 기간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엔 심한 반대에 직면했다. 학교의 전통과 규율을 모두 존중한다 말씀드렸다. 다만 일요일 자율학습은 구분해서 판단해야겠다 말씀드렸고, 내가 왜 일요일에 학교 자율학습 대신 다른 결정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정중하게 여러 번 설명드렸다.


결국 선생님은 내 굳은 결정에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 시간을 잘 활용하여 쉼과 함께 부족한 공부를 스스로 병행하라 하셨다. 듣기론 그 해 한 해 동안 이어진 일요일 자율학습에 빠진 학생은 나뿐이라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광신도였다. 그러나 모든 일이 생각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어느 날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피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했고 뒤이어 내게 고무줄놀이도 같이 하자 했다. 아이들이 원해서 시간을 잠시 나누는 것은 괜찮다 판단했고 그게 주가 아니었다. 아이들 인생에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왜 고등학생이 아이들이랑 노는지 자세히 물으셨다. 그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씀드렸고 부끄러운 건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친해진 나는, 아이들에게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혹시 교회를 다녀 본 경험이 있니?


예수님 믿는 사람이 이 중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다수 아이들은 교회를 다녀 본 경험이 없다 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사영리로 예수를 전했고, 아이들에게 그들이 사는 동네 교회 나가길 권유했다.


얼마 후 집에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혹시 현재라는 학생 번호일까요?
네 제가 현재인데요~
누구누구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가 얼마 전에 어떤 형을 만났다며 교회를 보내 달라 해서 동네 교회를 보내게 되었는데 너무 즐겁게 다니네요.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애가 더 의욕적이 되었어요

아이의 변화가 궁금해서 누가 너한테 교회 이야기를 꺼냈어? 물었더니
 
옆에 학교 형이 그랬다고 해서, 직접 통화해 보고 싶어 전화했어요
예 그러셨군요. 제가 아이에게 교회 믿음에 대해 소개했고,
엄마와 상의하고 동네 교회에 다니라고 권유했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줘서 고맙다는 말 전해요.
혹시 이상한 사람 일지도 몰라 걱정돼서 확인 전화 해 봤는데,
통화하고 나니 마음이 놓이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날은 정반대 전화도 받았다. 나 보러 공부나 열심히 하고 우리 애한테는 교회 이야기 하지 말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엄마의 입장에서 당연한 말씀이었고, 정중하게 그러겠노라 말씀드렸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다양한 마음들을 보았다.


호감과 반감이 교차하는 경험을 동시에 하면서,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 점은 내 평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길고 긴 수험 생활이 끝났고 서울 어느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모든 게 끝이 난 것 같았다. 잠시잠깐이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 안도했다


일요일 학교에 가지 않고 예배를 선택했고, 틈틈이 공부했지만, 다행히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꽃 피는 봄이 오고, 지금처럼 캠퍼스엔 벚꽃이 만개하던 4월이었다.


캠퍼스에 있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아버지였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현재야 지금 바로 병원으로 와야 할 것 같다. 네 엄마가 많이 다쳤어

네 엄마가 크게 다쳤다

.

.

.

 


내 인생 두 번째 암울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참을 수 있고, 참아냈다

그러나 가장 사랑하던 존재를 잃어버릴 수 있는 순간은 차원이 달랐다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당시 교회 전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이었고

건너편에서 오던 대형 차량과 어머니가 타고 있던 차량이 추돌한 대형 사고였다

어머니는 가장 뒷자리에 앉았고, 마지막으로 구출되었다 했다
구조할 당시, 매우 급박했던 상황이라 했다. 누구는 죽었다고 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몇 시간, 혼수상태로 계셨다


병원에 도착하니, 회색 속옷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깨어나지 못했고,

나는 어머니 가냘픈 손목에 살짝 손을 얹었다  

손을 조금이라도 세게 잡으면 어머니가 너무 아플 것만 같았다



나는 주저앉았다. 어머니가 곁에 계셔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엄청난 충격으로 아무 생각나지 않았다

스무 살 이제 모든 고통이 다 지나가고,

성인이 되었으니

돈도 많이 벌어 어머니, 아버지 호강 시켜 드릴 생각만 하고 있던 내게

혼수상태의 어머니를 지켜보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통이었다

내가 죽는 게 차라리 나았다 


어머니가 혹시 수술로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그저 소리 없는 눈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실만큼 오래 주저앉아 있었다


어째서, 우리 엄마에게..

도대체 왜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도 전도하고 집에 오는 길에 대형 사고를 만났다니..

저주를 받은 것만 같았다

내 상식으론 도저히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당신이 살아 있는 하나님이라면 이게 말이 되나요?
내가 얼마나 기도하며 살았는데, 내가 얼마나 당신만 생각하고 당신을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당신 살아 있는 거 맞긴 맞나요?
대답 좀 해 보세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나는 처절한 눈물을 훔치다, 겨우 고개를 들었다.

정신이 깨어나신 어머니는 병실로 들어갔고 그 후 몇 달 동안 수술과 재활을 병행해야만 했다

 

그 사이 병원을 전원해야 했고, 4월 봄에 시작된 병원 생활은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제야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아주 오래 때만 되면 찾아오는 통증으로 고생해야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이 고통은 왜 나를 계속 따라온단 말인가..


내가 믿는 그 예수는 거짓이 아닐까? 허황된 스토리에 불과한 게 아니란 말인가?


의심과 혼돈 속에 새내기 시절을 다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의심했고 방황하길 주저하지 않았으며 처절하게 씨름했다


친구들에겐 큰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간병 생활을 반복할 뿐이었다


고통 너머 더 큰 고통이 기다리는 삶이 싫었고 두려웠으며 동시에 질력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나는 예수를 더 의지했고 그 길만이 살 길이라 여겼다.


왠지 그분이 또다시 새로운 일을 행해 주실 거라 막연히 믿었던 것 같다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에는 입원해 계신 어머니 곁을 늘 지켰다




그 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나는 매일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린다

아픈 날, 너무 바쁜 날만 제외하곤 언제나 그래왔다


어머니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 계시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그래서 언제나 사랑하면 사랑한다 표현했다


어머니께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께도 해당되는 일이었기에 나는 딱딱하고 차가웠던 아버지마저

사랑으로 무너뜨렸다


지금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한다 스스럼없이 고백하신다


사랑한다 처음 용기 내어 말했을 때

쓸 때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공부나 해! 하셨던 아버지였다


결혼을 하고

이 사랑은 아내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아픈 내 아들에게도 똑같이 표현되고 있다


이 모든 시간이 은혜였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장 7절 - 10절)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께 지나온 삶 동안 감추어 두었던 내 상한 마음을 드린다  



사랑하는 어머니, 제가 중학교 들어가서 언제 이런 말씀을 드렸지요

이젠 엄마라고 안 부르고, 어머니라고 부를게요

어머니라고 부르고, 어머니로 대해 드리고 싶어요

철부지 아이가 아니라, 엄마를 생각하는 맏아들이 되고 싶어요


엄마, 아니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오랜 눈물을 봤어요

기도하며 통곡하던 모습도 보았고, 저희가 잠들었을 때 새벽 기도 가서 기도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두 아들 어떻게 키워야 하냐고,

남편은 일본에 있는데 아이들을 저 혼자 어떻게 키워야 하냐고

울고 불던 어머니의 기도를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허투루 살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저 보다 더 힘든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늘 효자가 되고 싶었어요.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실 수 있었던 그 위급한 상황에서

구조를 받았고, 수술을 통해 지금도 몸이 불편하지만 제 곁에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몰라요

제 아들이 아프고, 불편한 몸이라 아들 매일 고생한다고 마음 아파하시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느낄 때마다

저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어머니 근데 그거 아세요. 제가 마흔몇이 되고 보니, 저만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제 아들도 크게 아프거나 다친 걸 경험하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제가 일찍 깨달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깨달은 그대로 살려고 무던히 노력해 왔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 제 주위에는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 많고요. 제게 책을 내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제 삶 속에 주님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주셨어요.


이게 다 어머니가 저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덕분이에요. 한 번도 제대로, 구체적으로 말씀 못 드렸는데 지면을 빌어서 말씀드려요.


제 인생에 영웅은 우리 엄마이시고, 저는 어머니 아들로 태어난 것을 영광으로 알아요


칠십이 가까워지셨는데, 제가 어머니 노년을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평생 눈물로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더 힘내셔야 해요.


천국 가고 싶다는 말씀 자주 하셨는데 아니에요. 아직 아니에요. 우리 기쁨 이도 잘 크고 있고요. 저는 아내와 너무 사랑하며 살고 있어요.


어머니가 기도하신 대로 모두 다 이뤄지고 있으니, 우리 끝까지 기다려봐요.


놀라운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사랑해요 어머니, 사랑해요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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