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건강검진에서 현재 우울이 최고조이니 꼭 상담을 받아보라는 말을 듣고 심리 상담을 예약했다.
바로 정신과에 갈 수도 있지만 뭔가 좀 더 주저리주저리 하소연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심리 상담은 처음이 아니다. 인생의 고비 때마다 ‘어- 조금 더 가면 큰 일 나겠는데’ 싶을 때 심리 상담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매번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뭔가 문제가 해결되었다기보다는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심신이 지친 상태라서 이리저리 찾아가는 것도 힘들어 전화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사에게 상담을 신청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지난 몇 달간의 누수 사건도 이야기했다.
한동안 묵묵히 들으시던 상담사는 이런 질문을 했다.
‘이런 일들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신다고 했는데, 본인이 어떻게 될 거 같아서 그런 감정을 느끼시는 걸까요?’
순간 당황했다. 그걸 말로 해야 아나? 이런 상황에 있는 누구라도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지 않나?
나: 음.. 이게 장기화되면 제가 행복해지지 않을 거 같고, 이 일에만 온 삶이 묻혀 버릴 거 같아서 불안해요.
상담사 : 이 일로 본인이 행복하지 않고 이 일에 삶이 묻혀 버릴까 불안하신 거군요?
나: 음 … 행복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불행해지고 이 일에 온 삶이 매몰될까 봐서요
상담사: 본인이 불행해지고 여기에 매몰될까 봐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시는 거군요.
나: 음… 뭐… 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이 일로 인해 앞으로 계속 불행해지고 삶이 매몰돼 버릴까 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석연치 않았다. 나에게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을 주는 사건인데 막상 말로 정리해 보니까 너무 보편적이다.
내가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느꼈던 절망과 두려움이 말로 정리하면 ‘불행해질까 봐 ‘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 놀라웠다.
또 ‘매몰되어 버린다’는 것에 대한 걱정은 사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의식하면 되는 것 아닌가.
뭔가 엄청나게 커다란 그림자를 보고 달달 떨었는데 막상 까놓고 보니 그 실체는 작은 느낌이다.
상담사가 또 질문했다.
상담사: 본인이 생각하시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나: (아- 질문이 너무 상투적이라 손발이 오글오글…) 머릿속에 아무 걱정도 없고 잔잔하고 평화로운 상태요.
상담사: 아무런 걱정이 없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상태가 행복이시군요.
나: 네
상담사: 그런데 인생에는 늘 끊임없이 일들이 생기지요.
나: 네… 그렇죠…
상담사: 그런 외부의 끊임없는 자극이 몰려와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내가 두려워하는 ‘불행’의 가능성은 산다면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는 그런 것들이 자꾸자꾸 생겨나고 나는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양상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의 것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그것에 대응하는 내면의 힘을 기르라고 한 것 같다.
너무 많이 들어온,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라 삶이 원래 그렇다는 보편성과 상투성이 참 위로가 된다.
첫 번째 상담에는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대화가 만연했다.
그런데 그 보편성과 상투성이 그 어느 때보다 새롭게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