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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의 손으로 빚은 공간

스튜디오 포터리 수하

by 아공간

도예가의 손으로 빚은 공간, '스튜디오 포터리 수하'



Episode.9

Text | Chanho Hwang

Photos | Chanho Hwang



서울 목동의 어딘가, 따스한 빛이 스며드는 공간이 있다. 흙과 손, 그리고 사람이 함께하는 도예 공방 스튜디오 포터리 수하. 누구나 한 번쯤은 도예를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이 공간은 일상의 틈에서 작은 쉼표가 되어준다. 도예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삶의 균형을 맞춰가며 공간을 지속하고 있는 김수경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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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포터리 수하를 오픈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줄곧 예술을 공부해 왔어요. 그중 가장 맞는 도예를 선택하게 되었죠. 저는 평생 이 일을 해도 지겹지 않을 거 같아서 선택했거든요. 그와 동시에 일반인들도 도예를 꼭 한 번씩은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흙을 다루고, 만져보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말이에요. 많은 분들이 도예를 어렵게 생각하지만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업실 겸 클래스를 운영할 수 있는 이 공간을 오픈하게 됐어요.



이 공간의 대부분을 직접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처음 이곳을 봤을 땐, 시원하게 열린 창과 풍부한 채광이 마음에 들어서 덥석 계약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10년 가까이 방치된 곳이라 전기도 끊기고 수도도 없는, 말 그대로 0의 상태였죠. 전기나 수도 같은 전문적인 공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걸 제가 직접 했어요.

예전 작업실에서도 기본적인 작업들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가능했죠. 저는 공간이 주는 힘을 믿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 색이 오롯이 담긴 공간을 처음부터 제 손으로 쌓아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야 이 공간이 제 시간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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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만들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색감이에요.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서 핑크빛이 섞인 유럽식 미장을 선택했어요. 기본 재료가 흙이라 도예공방과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고요. 연휴까지 포함해서 2주 정도를 매달려 직접 미장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이곳의 채광이 정말 훌륭해요. 오히려 여름엔 더위가 걱정될 정도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죠. 햇빛이나 조명에 따라 공간의 색이 미묘하게 바뀌는 게 참 매력적이에요. 날씨나 시간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점도 이곳을 고른 큰 이유 중 하나였어요.



직접 작업하셨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완성도가 높아요.

많은 분들이 비슷한 말씀을 하세요. 간판 작업해 주신 사장님도, 바닥 시공하신 분도 처음엔 직접 했다는 말을 믿지 못하시더라고요. (웃음) 저는 정말 재미있게 했어요.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덕분에 색을 다루는 데 익숙했고, 전에 작업실에서도 미장을 해본 경험이 있어 수월했어요. 경제적으로도 아낄 수 있어서 좋았고요. 물론 돌이켜보면 약간 무모했던 선택을 한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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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구성된 가구나 오브제들도 직접 선택하셨나요?

네, 모두 직접 발품 팔아 하나씩 구입했어요. 제가 빈티지 가구를 좋아하는데, 마침 마음에 드는 빈티지 숍을 발견해서 운 좋게 괜찮은 아이템들을 몇 가지 구할 수 있었어요.

도자기 작업은 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물에 강한 테이블이 꼭 필요했거든요. 물론 다른 재질의 테이블도 고려했지만, 제 취향과 이 공간의 분위기에는 나무가 가장 잘 어울렸어요. 그래서 물에 강한 나무 테이블을 찾아다녔고, 결국 정말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어요. 1800년대 스웨덴에서 사용되던 테이블이라고 하더라고요.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이 공간에 오게 된 게 참 신기하죠.

이 테이블 외에도 의자, 벤치, 책장 같은 가구는 여행 중에 직접 구매해 오기도 했고, 작은 소품들은 작가들의 작업을 모으는 취미 덕분에 하나둘 자연스럽게 채워졌어요.



확실히 공간의 톤 앤 매너가 잘 맞는다는 인상을 받아요. 애정이 느껴진달까요.

그냥 이 공간이 오래 있어도 질리지 않고, 늘 즐거운 마음으로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이 애썼던 것 같아요.

그 마음이 방문해 주시는 분들에게도 전해질 거라고 믿었고, 실제로 수강생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해주세요. 예를 들어 옷걸이에 자기 옷을 걸어두고는 “옷이 더 예뻐 보여요”라고 하실 때,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 말 한마디에 힘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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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라는 공방 이름에 의미가 있나요?

의미 있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떠올린 게 ‘수하’였어요. 제 이름이 수경이고, 제 아이들 이름이 ‘하’ 자 돌림이에요. 그래서 ‘수’와 ‘하’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에요.

저는 평생 엄마니까, 이 공방도 제 평생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그렇게 이름을 짓고 나니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이 공간에는 보이지 않는 요소들, 이를테면 향이나 음악에도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공간에서 조도의 밝기나, 향, 음악 같은 비가시적인 요소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이 공방에도 조명을 나눠서 설치했고, 날씨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조명을 켜요. 그런 변화만으로도 집중이 훨씬 잘 되거든요.

향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좋아하는 향의 디퓨저, 자주 듣는 음악 등을 늘 세팅해 둬요. 저는 이런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공간과 어우러질 때, 그 공간이 주는 힘이 배가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고른 이 감각들이 누군가에게 만족감을 줄 때, 제가 바란 공간의 의미가 제대로 전해졌다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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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나 음악 같은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특별한 계기보다는, 제가 좀 감성적인 성향이라 그런 것 같아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 계절을 많이 타는 편이에요. 비 오는 날엔 와인을 마셔야 할 것 같고, 야간작업을 할 땐 촛불을 켜두면 더 잘되고… 어릴 때부터 그런 습관이 있었어요.

부모님은 잘 이해 못 하셨지만 동시에 “넌 그냥 예술해야 하는 애구나” 하시기도 했죠.

저녁 수업에 오시는 직장인 분들이 계실 땐 일부러 조명은 끄고 초만 켜두고 작업을 하기도 해요. 그게 집중하는 데 더 도움이 되거든요.

저는 이 공간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잠시라도 현실에서 벗어나 오롯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공방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 사이만큼은 특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면 하거든요.



여기가 목동이잖아요.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우선은 제 거주지와 가까워서 선택한 부분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지역이 학군지이기도 해서, 공부에만 집중하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그걸 실제로 써보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제가 학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들에게도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던 분들이 잠시라도 본인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도예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시작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특성과도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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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클래스 외에 개인 작업도 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아쉽게도 개인 작업은 못 하고 있어요. 클래스를 운영하면서 엄마로서의 역할도 병행하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잘 나지 않더라고요. 핑계일 수도 있는데, 도예는 꾸준함이 중요한 작업이거든요. 하다 말다 반복하면 진도가 안 나가요. 제 성격이 뭔가를 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 스트레스도 쉽게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미루고, 지금은 클래스에 집중하고 있어요. 물론 개인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크죠. 멀지 않은 미래에는 제 브랜드도 만들고 싶어요.



제가 하는 사진과는 다르게 도예는 손의 개입이 많잖아요. 그래서일까요, 직접 무언가를 만든다는 성취감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각자의 영역에서 재밌게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웃음)

그래도 저한테는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 훨씬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도예에도 물레, 석고 캐스팅, 핸드빌딩 이렇게 대표적인 방식들이 있는데, 저는 주로 핸드빌딩으로 작업을 했거든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도 손맛 나는 느낌을 좋아해서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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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요?

사실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공방을 만들면서 정말 크게 혼난 적이 있어요. 오픈하자마자 정수기 설치를 잘못해서 물이 밤새 샌 거예요. 그냥 새는 수준이 아니라, 한 층 전체가 물바다가 될 정도였어요. 그 순간엔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물을 뺄 장비도 없어서 쓰레받기로 계속 퍼서 날랐죠. 그렇게 3시간 넘게 작업하니까 겨우 마무리됐는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이었어요. 보상도 필요했고, 돈도 많이 들었고요. 지금은 그냥 액땜이었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일과 개인적인 삶 사이에서의 균형은 어떻게 잡아가고 계세요?

초반에는 균형이라는 게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어떤 계획을 세워도 수업이 생기면 무조건 수업을 우선했거든요.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아요.

성인 클래스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만, 키즈 클래스는 수업 분위기 자체가 확 떠 있어요. 아이들이 신나서 에너지가 넘치니까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피곤하고 예민해져서 제 아이들에게도 잘해주지 못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이건 조율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다행히 어느 정도 기준을 세우고 자리를 잡아서, 공방에서의 시간과 엄마로서의 시간 그리고 저 개인의 휴식 시간을 나눠서 조절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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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 클래스를 진행하는 건 어떤가요?

저는 아이들이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손으로 만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집중력도 길러지고, 직접 만든 것을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아이들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라고요. 일종의 성취감도 느끼게 해 주고요.

그래서 저는 정말 뿌듯해요. 실제로 어머님들도 굉장히 만족해하시고요. 도예 키즈 클래스는 피아노 학원이나 태권도장과는 또 다른 종류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특별한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수경 님에게 ‘스튜디오 포터리 수하’는 어떤 의미인가요?

전의 작업실도 그렇고, 지금 이곳도 그렇고 ‘나’라는 사람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에요. 가장 나다운 곳에 있어야 가장 나답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직접 꾸미고 제 취향과 정성을 가득 담은 공간이라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냥 '김수경'이라는 사람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요.

그리고 자신의 공간이라는 건,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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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지속되면 좋겠나요?

저는 사람들이 이곳에 더 편하게 오셔서 도예를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공간 안팎으로 전시된 작품들도 모두 편안한 느낌의 것들로 주기적으로 바꾸고 있어요.

많은 소통과 작업을 통해서 이 공간이 도예는 어렵고 진입장벽이 높다는 선입견을 깨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쇼룸까지는 아니더라도, 차도 한 잔 마시고 흙도 한번 주물러보고 갈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인터뷰는 금전적 대가를 받은 광고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래 사이트에서 인터뷰에 수록되지 않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hwangchanho.com/soohapo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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