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같은 시간에 기상하는데 얼마 전엔 어쩐지 아직 밤 같다는 생각을 했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엔 서울숲의 하늘이 부쩍 높아진 것을 느꼈다. 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2024년 여름도 신기루처럼 지나가고 있다는 뜻일 터다.
사실 내가 가을을 체감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나도 모르는 새 바뀌어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볼 때다. 여름 내내 신나는 걸그룹 노래로 가득했던 내 플레이리스트에 어느 날 묵직한 음악들이 새롭게 쌓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요즘 출퇴근길에 콩알만 한 무선 이어폰을 통해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몸은 ‘아직 더워!’를 외치는데, 귀는 자꾸 ‘가을이잖아!’ 하며 재촉하는 탓에 오마이걸의 <Classified>와 김동률의 <여름의 끝자락(Feat. 김정원)>을 반복 재생 중이긴 하지만. 김동률뿐이랴. 김연우, 다비치, 델리스파이스, 존박 등 내로라하는 발라더들이 나의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단풍처럼 물든다.
그중 2017년 발매된 다린의 데뷔곡 <가을>을 꺼내 본다. 마침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운 좋게 앉았는데, 덕분에 가만히 눈을 감고 이 노래를 음미하게 됐다. 오랜만에. 그리고 몇 년 전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코끝이 찡해졌다.
들떴던 감정을 차분히 눌러주는 전주도, 주변의 온갖 다름도 품어 안아주는 듯한 가수의 목소리도 좋은데,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특히 좋아한다.
그대 나 없는 가을을 미워하지 말아요
우리는 흘러가고 나는 지금도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그대 이제 창을 닫아요 바람과 함께
떠나는 시간은 내 고백을 가린 채
마치 없었던 척하지만
가사의 자음과 모음이 귀에 흘러 들어오던 날, 그러니까 이 노래를 처음 듣게 됐던 그날, 나는 어쩐지 어느 가을에 너무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너 버린 내 강아지를 떠올렸다. 떠나면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화자의 덤덤함이 내 강아지의 감정과 닮았다고 느낀 탓이었을까.
갑작스러웠던 이별 이후 몇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에 듣게 된 노래였는데, 그 순간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 사라질 리 없이, 그저 여러 일상에 묻혔던 그리움이 순식간에 터져 별안간 온몸을 짓눌렀다.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가까워져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드는 커다란 파도처럼.
조금은 슬프고, 많이는 그리운 아침이었지만 덕분에 가을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체감했다. 물론 감상에 빠져 목적지에서 못 내릴 뻔했지만.
괜히 센티 해지는 감정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계절. 다린의 <가을>이 어떤 이의 일상에도 잔잔한 파동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