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 아부지와 그의 딸
우리 아부지는 말이 많다.
남들과는 인사 외엔 말이 없다.
우리 가족에게만 말이 많다.
특히 나에게만 유독 많다.
우리 아부지의 입은 식탁에서 가장 활발하다.
음식을 씹느라가 아니라 말을 하느라.
우리 엄마는 아부지의 말이 길어질 때 (사실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매번 길다) ‘말’ 대신 '연설'과 '설교'라는 단어를 쓴다.
그의 연설의 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것을 아우른다.
설상가상으로 밥까지 느리게 먹는 우리 아부지는 바쁜 일정이 없는 날엔 식사시간인지 설교시간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 시간을 2시간도 훌쩍 넘길 수 있다.
그 시간이 즐겁냐고?
이에 답할 제일 적절한 고사성어가 있겠다.
과유불급.
"연설 좀 그만하고 빨리 밥 좀 무라."
"오늘 설교가 느무 길다, 고마 빨리 좀 묵고 치우자."
우리 집 식탁에서 아부지의 연설 다음으로 제일 자주 들리는 말이다.
"느그 아부지 이제 연설 들어줄 사람 없어서 우짜노."
내가 스위스로 유학을 가기 전에도 우리 엄마는 다른 걱정보다 이 걱정을 많이 했다.
두 살 터울인 우리 오빠도 있지만, 아부지가 원하는 만큼의 긴 연설을 들어주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즉 제일 만만한 둘째이자 막내딸인 내가 그의 유일한 관중이었다.
유일무이한 관중이 며칠도 아닌 몇 년간 관중석을 비우게 되니 연설자는 허전할 것이 분명했다.
"아유~ 딸이랑 아부지랑 어쩜 그리 대화를 재밌게 해~"
아부지와 내가 외식하면 식당 아주머니께서는 늘 부러워하듯 이야기하셨다.
사실 아부지의 입은 연설을 하느라 바빴고 내 입은 음식을 씹느라 바빴던 건데, 뭐 그것도 일종의 대화로 치겠다.
이쯤 되면 궁금해질 것이다.
‘이 집 아부지는 왜 딸에게만 이토록 말이 많으실까?’
그저 내가 막내딸이라서?
프롤로그에서 다 공개하면 재미없다.
그 이유들이 내 0대와 10대, 그리고 20대에 이어진다.
"아부지가 맨날 이렇게 연설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 들어 우리 아부지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내 눈엔) 아직 팔팔한 그가 계속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세월에 지는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어느덧 그는 은갈치 부럽지 않은 멋진 자연 회색빛 머리를 자랑한다. 다행인지 아닌지 입은 여전히 활발하다.
문득 느꼈다. 그에게 자랑할 머리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그의 입이 조금이라도 더 활발할 때 그와의 이 소중한 이야기를 기록해야겠다고.
나의 시간은 이제 막 청춘을 지나고 있지만,
우리 엄마와 아부지의 시간은 이미 청춘을 지나 노년을 향해 있으니.
시간과 함께 무르익는 그의 머리칼과 그의 딸의 이야기를,
평범함 한 스푼에 범상치 않음 두 스푼을 담은 스토리를 나누고 싶다.
말 많은 딸바보 아부지와 환상의 티키타카를 자랑하는 딸의 이 특별한 이야기를 다른 곳이 아닌 브런치에 담을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