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가 지어준 내 이름의 비하인드 스토리
나는 아리따운 솥귀다.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자신의 이름의 뜻을 알아와 발표하는 숙제가 있었다.
내 이름을 지은 사람이 아부지라는 것만 알았지 내 이름에 무슨 이야기가 얽히고설켜있을지는 잘 몰랐다.
"아부지, 내 이름 뜻이 뭐야?"
-네가 한번 생각해 봐.
평소엔 말도 많으면서 왜 이건 설명해주지 않는 거지?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부지 덕에 나는 내 이름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하는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娥 아리따울 아,
鉉 솥귀 현.
어디 한번 보자.
한자 이름이니 먼저 한자의 뜻을 살펴보기로 했다.
‘아’와 ‘현’ 둘 다 이름에 꽤나 자주 쓰이는 한자이다.
그럼에도 아부지는 굳이 ‘아리따울 아’를 썼다는 데 강조를 했고, ‘솥귀 현’에는 더 큰 강조를 했다.
실제로 찾아보니 ‘예쁠 아’, ‘아름다울 아’, ‘아리따울 아’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뜻과 모양새도 조금씩 달랐다.
평소에 작은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도 매우 신중한 그다운 선택이었다.
그리고 ‘빛날 현’, ‘어질 현’ 등이 보통 이름에 자주 쓰이는 한자였다.
그런데 내 이름은 뭐라고..? 솥귀 현..?
그 당시 나의 뇌는 단순히 ‘아리따운 솥귀’ 그 이상의 멋진 뜻을 생각해내기엔 너무나도 작고 귀여웠다(?).
더군다나 그놈의 솥귀가 도대체 무엇인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아리따울’ 뒤에 이렇게 낯선 녀석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행히 아부지는 내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은 대신 솥귀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사실 조금의 생각과 센스만 있었다면 이때 이미 뜻을 알았을 법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작고 귀여운 나의 뇌는 솥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속뜻을 파악해내지 못했다.)
솥귀: 옛날 솥의 운두 위로 두 귀처럼 삐죽이 돋은 부분. 가운데에 구멍이 있어 꿰어 들도록 되어 있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솥귀의 뜻은 알아냈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내도 더 좋은 뜻이 떠오르질 않는다.
친한 친구들 중 가장 똑똑한 동네 친구 희주(가명)에게 SOS를 청했다.
“희주야, 내 이름이 무슨 뜻일까?”
(솥귀에 대한 설명…)
-음… 꼭 필요하다는 뜻 아니야?
정답을 알기 전이었지만 왠지 이것일 것 같았다.
역시 내 친구 희주는 달랐다.
‘유레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희주를 통해.
예상했던 대로 희주는 나보다 더 크고 멋진 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예상했던 대로 희주의 한 마디는 정답지와 다름없었다.
그 덕분에 내 작고 귀여운 뇌를 조금 더 괴롭혀 볼 수 있었고 발표는 멋지게 끝냈다.
“저는 아리따운 솥귀, 김아현입니다.
저희 아부지가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아’에도 종류가 다양한데 저희 아부지는 '예쁠', '아름다울'도 아닌 ‘아리땁다’는 데 큰 뜻을 담으셨습니다.
솥귀란 말 그대로 솥에 달려있는 귀인데요,
솥귀에 있는 구멍 사이로 막대기를 꿸 수 있어 이동하기 편리하게 만든 부분입니다.
옛날 솥은 굉장히 무거워서 드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이때 솥귀가 아주 중요한 손잡이 역할을 해내죠.
그래서 제 이름의 의미는..."
이후 부분은 생략하려고 한다.
희주의 뇌만큼 크고 멋진 뇌를 가졌을 독자 분들은 이쯤에서 이미(어쩌면 훨씬 전에) 위의 문장을 완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내 이름 속 솥귀가
이제는 기특하기까지 하다.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하고 소중한 아리따운 존재.
나는 아리따운 솥귀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fnf079/221330820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