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양은 주전자

가슴이 먹먹한 새벽이다.

by 신아현

꿈을 꾸었다. 친구가 춥고 먼 길을 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두려웠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잠시 집에 들러 엄마, 아빠에게 인사한 후 친구의 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런데 엄마가 집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사이드미러로 점점 작아지는 엄마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꿈이지만 난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다시는 엄마를 못 볼 수 있다는 걸…. 길을 가는데 교통사고로 차에 다리가 끼여 소리 지르는 사람, 다리 없이 목발로 간신히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무서워 가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해 체념한 듯 따라갔다. 그렇게 끝도 없는 길을 가다 꿈에서 깼다. 심장이 아프고 먹먹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꿈에서 손 흔드는 엄마 모습이 생각 나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어제는 엄마의 두 번째 염증 제거 수술일이었다. 의사는 큰 수술이 아니라고 했지만,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일이 손이 잡히지 않았다. 앞 수술이 지연되는 탓에 아침 10시 30분 예정이었던 수술은 4시가 돼서야 시작되었다.

사무실에 계속 휴가를 낼 수 없어 점심시간과 외출을 끼워 엄마를 보고 왔다. 수술복을 입은 엄마가 유난히 힘없고 아파 보였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아파 보여?”

“어제 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잠을 못 잤더니 지금 잠이 오네.”

“잘됐네. 수술실에서 눈 뜨고 있지 말고 계속 자면 되겠네. 덜 아프게….”

생각 없이 말했는데, 순간 엄마가 진짜 눈을 안 뜨면 어쩌나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수술복 사이로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엄마 다리가 보였다.

“우리 엄마 진짜 살 많이 빠졌네. 어릴 때는 엄마가 날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살 있으면 좋겠다.”


엄마는 젊을 때 덩치가 있는 편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엄마는 삼십 대 후반이었다. 엄마는 살을 빼기 위해 매일 5시에 일어나 뒷산을 올랐다. 뒷산 기슭 약수터에서 약수 한 통을 길은 후 무료 에어로빅 수업을 받고 내려왔다.

우리 세 남매는 주말마다 엄마 따라 뒷산에 가고 싶어 했다. 등산이 좋아서도, 엄마처럼 에어로빅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뒷산 기슭에 파는 따뜻하고 달콤한 콩국이 먹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엄마는 잠이 와서 눈도 못 뜨는 우리를 일부러 깨우지는 않았다. 우리 나이에는 콩국보다 잠이 보약이라며 스스로 일어나는 아이만 데려갔다. 난 잠귀가 밝아 엄마가 뽀스락 거리면 눈을 번쩍 떴다. 덕분에 주말마다 콩국 먹는 행운을 자주 누렸다. 엄마는 콩국을 공으로 사주지는 않았다. 누구든 따라가면 노란 양은 주전자를 손에 쥐어 주었다. 약수를 한 통이라도 더 받아 가족에게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어느 날, 그날도 한 손에 양은 주전자를 들고 엄마를 따라 산에 올랐다. 주전자 가득 약수를 받은 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콩국을 먹었다. 입안 가득 고소하고 달콤한 콩국 향을 채우고, 약수 가방을 등에 짊어진 엄마 뒤를 따라 쫄래쫄래 걸었다. 그런데 순간 발을 헛디뎌 산길 옆 비탈길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한참을 구르다 큰 나무에 몸이 걸려 멈췄다. 정신을 차려 보니 주전자를 든 손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엉엉”

멀리 보이는 엄마를 쳐다보며 울고 있을 때, 엄마가 놀라서 소리쳤다.

“주전자는? 주전자는 괜찮나?”

아파서 엉엉 울다가 놀라 주전자를 보니 다 구겨져 못쓰게 되어 있었다. 갑자기 아픈 손가락보다 주전자 때문에 혼날게 무서워 더 울었다. 간신히 기어 올라왔는데, 엄마는 다친 내 손가락보다 구겨진 주전자를 더 안타까워했다. 난 나보다 소중한 주전자가 미웠고, 주전자를 더 사랑하는 엄마도 미웠다.

그날 이후 난 왼쪽 엄지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는다. 손가락 근육이 손상되어 몇 번 침을 맞았지만, 낫지 않았다.

몇 해 전 굽혀지지 않는 내 손가락을 보며 엄마가 말했다.

“내가 미쳤지. 그땐 왜 니 손가락보다 주전자가 먼저 걱정됐을꼬. 난 니가 손을 이렇게 다친 줄도 몰랐다.”

없는 살림에 장만한 노란 양은 주전자가 더 소중했던 엄마의 마음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했다. 그러나 지금은 수시로 끄집어내는 추억이 되었다.


앙상한 엄마의 다리를 보면서 엄마의 젊음, 뒷산의 콩국 그리고 양은 주전자의 추억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엄마 인생에서 지금이 제일 날씬하지?”

“그러게. 니도 살 빼지 마라. 나이 드니 그런 살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엄마 보면서 안 빼려고 생각 중이다. 어차피 다 빠지네.”

살 이야기로 웃으며 수술 전 두려움을 조금 풀었다. 짧은 점심 면회 시간이 끝났다. 그리고 또 부분 마취로 다리 살을 깎아내는 고통을 참아야 하는 엄마를 꼭 껴안아주었다.

두 번째 수술은 처음과 달리 1시간 만에 끝났다. 그러나 의사는 같은 이야기만 반복했다.

“다리를 절단하면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는데, 심장이 좋지 않아 전신마취를 할 수 없으니…. 옆으로 번지는 염증을 긁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고, 저희로서도 답이 없어 답답합니다.”

답을 찾아달라고 애원하고 싶지만, 계속 울며 매달릴 수가 없었다.


이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고 싶다. 이렇게 엄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오래도록 기억을 나누고 싶다.

그러다 운이 좋아 염증 치료가 잘 되고 상처에 새살이 돋으면, 다시 엄마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걸어보고 싶다.


여전히 추운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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