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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하는 연아
선풍기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폭염 속 선풍기
by
신아현
Aug 15. 2024
아침부터 술을 먹은 민원인이 와서 소리친다.
"이런 더위에 너희의 무관심으로
사람이 죽는다고!
선풍기 하나 구해도!"
또 한 분은 말한다.
"선풍기 고장 나서 고치고 있습니다. 아이고~고쳐 쓰면 되지요."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폭염으로 지구가 폭발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무실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내딛여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런 더위가 걱정되는 정부와 상부기관은 폭염 대비 공문을
조직의 제일 하위기관인 동주민센터로 끝도 없이 내린다.
'폭염으로 인한 취약계층 관리 철저'
'폭염 위기가구 가정방문 확인 후 생수 전달'
'폭염 무더위 쉼터 확인'
취약계층만 1,000세대 이상, 독거노인까지 합하면 수천 세대 주민을 동주민센터 복지담당자 3~4명이 방문해서 확인하라는 지시 사항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다 알지만, 누군가는 지시를 내려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모든 업무가 집결되는 곳이 동주민센터다.
살인적인 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취약계층이 견뎌야 할 여름을 생각하면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다.
7월 이후 매일 가정방문을 나가 에어컨과 선풍기 보유 여부를 확인하며 더위에 어떻게 지내는지 여쭙지만, 눈으로 확인하면 괴로움만 더해진다.
에어컨 없이 이 무더위를 따뜻한 선풍기 바람으로 버티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책 없는 안타까움만
전하는 현실에 마음이 더 무겁다.
모든 가구에 에어컨을 구입해 줄 수도, 아니 고장 난 선풍기조차 구입해 줄 수도 없다.
매년 내려오던 선풍기 후원이 올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라의 경기를 체감할 정도니...
이런 상황에 폭염위기 가구를 방문해 생수 한 박스 전달하며 안부를 묻는 게 민망하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상부기관이 우리에게 대책 없이 폭염 위기 가구 관리 철저라고 내리는 공문처럼, 우리도 20개들 입 물 한 박스 건네며 폭염에 건강 관리 잘하시라고 대책없는 안부만 전한다.
몇 달 동안 선풍기가 없어 힘들다고 찾아와 소리 지리는 민원인이 있었다.
후원 들어오는 선풍기가
없는 상황이라 성품이 들어올 때까지 쓸 수 있도록 우리 집 선풍기를 가지고 갔다.
그런데 민원인 집에
버젓이 선풍기가 있는 게 아니가?
"선풍기 있네요!"
"선풍기 하나로 24시간 돌렸더니 선풍기가 폭발할 것 같다. 선풍기 두 대는 있어야지."
그러고는 헌 선풍기 가져왔다고 되레 더 소리를 지른다.
그동안 들은 욕과 선풍기 싸들고 오면서 흘렸던 땀방울이 억울하기까지 하다.
다음 날, 또 물 한 박스를 들고 다른 집을 방문했다.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는 칼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선풍기를 고치고 있었다.
"할아버지, 선풍기가 고장 났어요?"
"네. 쌩쌩 안 돌아가네요."
"선풍기 후원 들어오면 꼭 하나 챙겨드릴게요. "
"아이고. 나는 고쳐 쓰면 됩니다. 선풍기 없는 사람 챙겨주이소."
선풍기 한 대가 후원 들어온다면 두 분 중 누구에게 선풍기를 줘야 할까?
개인의 욕구가 우선일까? 사회적 형평이 우선일까?
당연히 후자에 손을 들겠지만, 그러려면 더 많은 고함과 욕을 견뎌야 한다.
매일 답 없고 대책 없이 마음만 앞선다.
'나의 두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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