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웃는 엄만 더 예뻐.
엄마는 예쁘다.
염증 제거 수술 다섯 번만에 드디어 피부이식 수술을 했다. 원래 편마비였던 다리라 이식한 피부가 잘 생착할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벌어진 상처를 덮어야 했다. 한 달 동안의 고통을 잘 버텨낸 마지막 수술이었다.
의사는 피부이식수술 전 면담을 요청했다. 첫 면담의 충격으로 의사와의 면담은 항상 긴장된다.
다행히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가 피부이식이 불가능한 엄마는 동종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료보험 본인부담률이 높아 비용이 많이 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가 더는 감염되지 않게 덮는 역할만 할 뿐 보기엔 흉하다고 했다.
“여러 가지로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의 걱정과 자세한 설명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 전까진 살아계시기만 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흉한 다리로 살아갈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예뻤다. 늘 단정하고 예쁜 모습으로 있길 원했다. 엄마는 결혼하고 몇 년은 시댁 식구가 일어나기 전에 화장부터 했었다고 했다. 모두에게 예쁜 사람이고 싶었고,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51살에 편마비로 거동이 불편해도 눈뜨면 머리를 빗었고, 잠시 외출을 나가도 옷을 대충 걸치지 않았다. 비싼 옷은 없었지만, 밝은 색 옷을 즐겼고, 모든 옷은 불편한 한 손으로 깨끗이 세탁해 입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엄마가 예쁘다고 했고, 엄마는 그 말을 즐겼다.
그런 엄마가 흉한 다리를 보면 어떨지 걱정이 되었다.
의사와 면담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로 피부이식 수술에 대해 전했다.
“괜찮다. 다리 자를 뻔도 했는데, 흉터쯤은 긴 바지 입고 감추고 살면 되지.”
열이 나지 않고, 컨디션 좋은 날에 맞춰 마지막 수술을 했다. 수술실 앞은 아빠가 지켰고, 나는 사무실에서 기도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1시간이 훌쩍 지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수술 잘 됐단다. 의사가 이제 한시름 덜었단다.”
소식을 전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격한 울음을 참는 듯 꺽꺽거렸다. 엄마의 부은 다리를 낫게 하고 싶어, 소문으로 알게 된 침쟁이 집에 갔을 뿐이었다. 늘 그랬듯 용한 침쟁이는 웬만한 의사보다 낫다고 믿었다. 이 지경이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아빠 마음은 한 달 동안 엄마만큼 생사를 오갔으리라.
아빠가 원망스럽고 밉기만 했는데,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힘들었구나. 나보다 아빠가 훨씬 더 힘들었구나.
노인 둘이 의지하며 잘 살아줘서 사실 편했었다. 엄마 다리가 부어도 병원에서 원인을 모른다고 하니 나 역시 적극적으로 이유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매주 엄마와 나들이를 가고, 목욕탕을 오갔을 뿐 두 분이 알아서 잘한다 믿었다. 아니 믿어야 내가 편했다. 그 믿음은 나를 위한 것이었고, 두 분은 서로만 의지하며 살기엔 너무 늙고 힘들었다.
올해 둘째 아들까지 대학을 진학했다. 두 놈 다 재수한 탓에 4년 동안 몸과 마음이 매여있었다. 이제야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시아버지가 먼저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 이젠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할 때가 됐다는 신호였다.
20대까지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살아왔고, 결혼하고 20년 동안은 아이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일이 끝나자 양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렇게 10년, 20년이 지나면 내 나이 60이 넘어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세대를 이어야 하는 큰 과업을 위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나를 찾기 위해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꿈꾼 일을 하나씩 해낼 때마다 살아가는 이유를 찾은 듯 행복했다. 그런데 그 희망과 행복이 가족 앞에선 무색하리만큼 의미가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태어난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낳아준, 내가 낳은 가족과 이 짧은 시간을 소중하게 잘 가꾸어 나가는 것이었다.
피부이식 수술 후 3일이 지났다. 정형외과 의사를 퇴원을 이야기했고, 심장내과 의사는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퇴원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이제 따뜻한 3월이 되었다. 다음 주면 시골집 앞에 유채꽃과 벚꽃이 필 것이다.
그 길을 엄마와 함께 걷고 싶다.
꽃을 보며 웃는 엄마는 늘 그렇듯 꽃보다 더 예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