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그리고 다시 시작
엄마가 퇴원했다. 7번이나 홀로 수술실을 드나들며 버텨낸 엄마의 노력 덕분이었다. 정형외과 의사는 기적이라고 말했고, 심장내과 의사는 엄마를 강한 사람이라며 추켜세웠다.
엄마와 병원을 나와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두 노인은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못 올지 알았는데….”
자신의 상태를 잘 알지 못했던 엄마보다 아빠가 더 목놓아 울었다.
어린 시절 내 눈엔 두 사람이 왜 결혼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고, 자식을 키워 내야 하는 고단함만 남겨진 부부 같았다. 그랬던 두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몸이 불편한 엄마에게 아빠는 지팡이 같은 존재였고, 활동적인 아빠에게 엄마는 할 일을, 살아갈 이유를 부과하는 삶의 동력이었다. 사랑이라 하기엔 부담스럽고 우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애정이었다.
엄마의 퇴원 소식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옆집 아저씨는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자마자 집에서 뛰어나왔다.
“아이고, 고생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다 걱정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또 다른 이웃이 엄마가 좋아하는 고구마와 바나나가 든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고생했다. 온 동네가 난리였다. 진짜 천만다행이다.”
같은 부산 하늘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와 온도가 다른 산복도로의 오래된 동네, 허리 펴고 걷는 사람보다 굽은 사람이 더 많은 동네의 따스한 정이 가슴에 사무쳤다. 평생 한동네에서 자식을 함께 키우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눈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엄마, 아빠를 내가 사는 동네로 모시고 오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다. 그러나 두 분은 50년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나기 싫어했다. 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집 밖을 나가면 바로 차도인 동네가 노인들이 살기엔 분명 불편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집 밖을 나가면 산책로가 있는 내가 사는 동네가 분명 더 좋은데, 두 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불편한 거보다 외로운 게 더 싫다.”
“내가 옆에 있잖아.”
“옆에 니만 있는 게 더 외롭다. 늙어서 자식한테만 의지한다는 게 얼마나 서럽고 외로운데. 여기서 동네 사람들하고 이 집 저 집 오가며 같이 밥 먹고 노는 게 더 좋다.”
그때는 그 말이 노인의 똥고집 같았고, 나를 못 믿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픈 엄마 걱정에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울고, 퇴원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와 끌어안아주는 등 굽은 노인들을 보면서 엄마에겐 바쁜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같이 늙어가고 있었다.
한 달 만에 엄마 머리를 감겨드렸다. 다리 수술 부위엔 랩을 칭칭 감은 후, 양쪽으로 반창고를 붙여 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후 몸도 비누로 깨끗이 씻어드렸다.
“지금까지 한 목욕 중에 제일 시원하다.”
매일 목욕하고, 깨끗하고 이쁜 걸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을까.
오전 휴가를 내고 퇴원과 목욕까지 마무리하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딱 1시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면서 팔이 떨렸다. 엄마를 잡고, 씻기고 하느라 팔에 근육들이 놀란 모양이다.
감기는 눈을 뜨기 위해 커피 두 잔을 내려 먹고 다시 일에 집중한다.
어느 순간 내 앞에 있는 일, 내 앞에 있는 사람,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이고 기도가 되었다.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명상하듯, 기도하듯 일을 한다.
이별도 준비가 필요한 것이 맞았다. 지금부터는 언젠가 이별할 엄마와 이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생각이다. 아쉬움이 남지 않을 만큼 안고, 이야기하고, 함께 지내며 그 시간을 채워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를 적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