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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어를 잘하냐고요?

지금의 나로부터 시작하기

by 아일

"00님은 영어 잘하시잖아요~"


SNS 공간에 이따금씩 영어공부 기록을 공유했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허둥대며 부정하는 말을 서둘러 고르곤 했다.


나의 영어가 다소 오해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90년대 영어 교육을 받아온 세대라는 배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와 비슷한 나이대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하나 뻥끗하지 않고도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 영어라는 언어를 만났다. 내신 100점 혹은 외국어영역 80점을 목표로 밑줄을 죽죽 긋고, 문장을 끊어가며 영어를 마주했다. 당시 반에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고, r과 f를 선명하게 발음하며 교과서를 읽는 그의 등뒤에서 친구들은 서로 간지럽다는 눈길을 주고받곤 했으니까.


그때의 친구들은 대체로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졸업 이후 영어와 인연을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재회할 계획도 없다. 그러니 내가 읽는 책이 청소년 소설일지라도 카테고리는 명백하게 영어 원서인 데다 영어 글쓰기를 연습 중이라는 사실을 접하면, 내가 두 손을 저어가며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한들 나는 그저 겸손한 영어 실력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문득 멈추어 생각에 잠긴다. 다시 영어를 시작했던 십여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나도 이들처럼 말했을까? 그렇다. 틀림없이. 이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며 어렴풋하게 그려봤던 희망사항은 지금의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당시 막연히 높아 보이기만 하던 영어란 신발끈을 단단히 묶기만 하면 오를 수 있는 산이었구나 싶어 져서.




영어 실력은 꾸준히 우상향 하는 그래프를 그리지 않고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들 말한다. 즉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지난한 시간을 지나야만 어느 순간 한 단계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의 여정을 이 말에 포개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시작한다는 설렘과 열정으로 많은 영어 공부법을 시도했던 3년의 탐색기, 어린이 소설에 밑줄을 긋고 단어를 빼곡히 정리하며 영어를 촘촘히 만났던 3년의 성장기, 이젠 이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에 좀처럼 땅에 발을 딛지 못했던 4년의 정체기. 그리고 다시 땅에 발을 딛고 충실한 성장을 도모하는 1년여의 시간 그리고 지금. 그래프를 그리지 않아도 눈에 보일 듯이 선명한 굴곡이 펼쳐진다.


10년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간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한결같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열정의 양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임신을 준비하던 새댁은 이제 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아이와 살아가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쉼 없이 위아래로 굴곡을 만들어내던 삶의 그래프를 생각해 본다면, 나의 영어 그래프는 비교적 잠잠한 편일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삶의 그래프가 한없이 아래로만 향하던 때에도 마음만큼은 영어의 생명이 다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대체 영어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결혼은 삶의 방식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로 인해 좀처럼 내 맘 같지 않던 삶에 비하면 영어는 가능성의 영역이었다.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던, 희망의 무언가.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0처럼 보여도 금세 1을 만들 수 있었고, 2와 3을 꿈꿀 수 있었다.




처음 0에서 1을 만들어낸 후, 꽤 오랜 시간 1과 2 사이를 방황했다. 그저 매일 진득이 앉아 영어와 대면하던 시간은 줄어들고, 더 좋은 영어 공부법이 있는지 찾고 또 찾았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들을 해외 주문하며 책부터 쌓아나갔고, 생각보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쉽게 책장을 덮고 또 다른 책을 찾아 나섰다. 마치 나를 한 단계 끌어올려줄 '한 권의 마법 같은 책'이라도 있는 것처럼.


과거의 작은 성장을 만들어낸 건 결코 특별한 방법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나의 실력을 정확히 인정하고,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영어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땅을 딛어야 했다. 힘을 덜 들이고도 더 높이, 더 멀리 가고 싶었던 마음을 천천히 흘려보내고 숨을 정돈했다. 요행이 아닌 정직한 출발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를 투명하게 마주하는 일부터 해야 했다. 남들의 기준에서의 성장이 아닌, 어제의 나로부터 만들어낸 작은 성장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더 이상 부유하지 않고 차분히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나아갔다.


그제야 비로소 나의 그래프가 또 하나의 층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층계를 딛고 올라서며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꾸준히 영어와 잘 지내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라면, 저마다의 속도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나요?"


10년이나 영어를 곁에 두고 있지만 나의 영어는 여전히 '잘한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성장 중이라고. 어제보다 더 많은 영어가 읽히고 들리며, 내가 써 내려간 영어 문장이 점점 나를 닮아간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렇게 새로 만든 층계에 올라서서 저만치에 있는 다음 층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누군가 다시 내게 영어를 잘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전보다는 훨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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