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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야 하느니라

일상에서 겪은 이상한 이야기_10

by 김성래

2015년 1월 7일에 쓴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진짜... 별 이상한 시험에 다 들어봄. 아침 일찍이라 조금 잠이 덜 깬 상태로 버스에 탐.

버스 출발하려는데 자매님 한 분이 겁나 뛰어와서 버스에 탔음.

예전에 이래 뛰어와서 안 타고 가던 길 뛰어 가버린 형제님이 있었지.


무튼 이 자매님은 오늘 춥다 춥다는 예보를 몸으로 증명하고 계셨음.

눈 빼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이 없음.

근데 나도 오면서 느꼈지만 바람이 옴팡지게 부는 상황이 아니면 겁줬던 만큼 춥진 않음.

게다가 뛰었으니 뭐. 많이 더우신 건지 타면서부터 모자며 목도리며 앞섶이며 하나씩 풀고 있었음. 그러고는 내 앞자리에 앉음.


근데 이분 정수리에 애매하게 삐져나온 머리가 있는데 그게 흰머리. 짧게 삐져나와있음.

모자 쓰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머리 눌려있는데 이놈만 무사함.

김수영 시인의 '풀'이 생각남. 왜 저건 안 눕는 건지. 누웠으면 보이지나 않을 것을.


좀 거슬리긴 하지만 무시하고 창밖을 보려는데 차가 흔들릴 때마다 저 한가닥이 자꾸 좌우로 춤을 추면서 약 올림. 마치 날 뽑아줘~ 하는 느낌임.

김춘수 시인의 꽃 마냥.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몸짓하고 있는 건가 싶었음.

확 뽑아 버릴까?라는 마음과 니가 저걸 뽑은 다음 뒷감당할 수 있냐?라는 마음이 충돌함.

사실 뽑으면... 나의 거슬림이 조금 해결되었다는 거 말고는 별다를 게 없음.

모르긴 해도 상변태 취급받을 것 같은 느낌은 확실해서 그냥 흰머리 노려만 보고 있었음.


기생수에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보는 장면이 있음.

사람이 아니면 머리카락이 뽑히는 순간 꾸물꾸물하다가 훅 죽어버림.

저 흰머리 뽑으면 왠지 그럴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음.

그렇게 걸리면 난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그냥 마음 접기로 함.

진짜 어처구니없게 자기 합리화했음.


그리고 그 자매분이 내리면서 시험에서 해방되는가 했음.

우르르 사람 내리는 와중에 다른 자매분이 앉으심.

평소에는 네 잎 클로버 같은 것도 죽어라 못 찾는데 오늘따라 왜 이런지 모르겠음.

이 분도 뒤통수에 흰머리 있음.

심지어 완전 흑발이신데 흰머리 하나 딱 보임. 브릿지 넣은 줄.

왜 이놈만 굵어 보이는지. 내 착시일 거야.

아까는 짧은 녀석이 건들건들해서 거슬렸는데 이번에는 긴 놈이 턱 하고 있으니 이것도 만만치 않음.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시고... 라기에는 이런 시험은 대체 무슨 시험인 건지.


결국 잘 참고(?) 내려서 문득 생각해보니 둘 다 젊은데... 라기 보단 어려 보이는데 뭔 벌써 새치들이.

그러고 보니 젊은 세대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새치가 많아졌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 것 같음.

확실히 그런 것 같음... 아니면 나같이 둔한 애가 이런 걸 오전 중에 두 번이나 발견 할리 없지.


역시 잠이 덜 깨고 버스 타는 건 위험한 듯.

아침부터 스트레스받아서 나도 새치 생길 것 같음.


조금 더 나이먹고 생각해보니 흰머리도 소중한 머리니 함부로 하면 안될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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