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에서는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생각한 대로 그린 이야기 쪽의 방향을 가지고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중세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중세 하면 암흑시대라는 말이 많이 떠오르는데요.
암흑시대라는 말로 모든 걸 묻어버리기에는 생각해 봄직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집트 미술과 중세 미술은 근본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집트 뒤의 그리스 미술과 중세 이후의 르네상스를 같이 놓고 보면 더 생각해 볼 것들이 많은데요.
아마 경제적인 기반도 분명히 작동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 로마와 르네상스의 경제에서는 상업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상인들은 여기저기 왕래를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의 힘이 강하다 보니 정치적으로 군주제보다는 공화제적인 성향이 강했죠.
미술 역시 활기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5, Uffizi, Florence
이집트와 중세는 농업이 주가 되는 나라였습니다.
정착해서 사는 농민들을 노리는 약탈자들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항상 있게 마련이었고,
농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강력한 힘이 필요했죠.
그러다 보니 정치적으로 권력이 강한 왕이 나오는 군주제가 시행되던 시기입니다.
미술은 자연스럽게 왕의 권위를 강조하는 소위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The small private Wilton Diptych for Richard II of England, c. 1400, with stamped gold backgrounds and much ultramarine.
또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두 시대 모두 현세보다 내세를 더 중요하게 여기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질없는 현실 따위를 정확하게 그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죠.
이런 점은 작가의 주체성 역시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집트 이후의 그리스 시대의 예술가는 자신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만드는 주체였습니다.
중세 이후의 르네상스는 인문주의 말 그대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시기였죠.
하지만, 이집트와 중세에서의 예술가, 아니 장인이라고 해두죠.
이 장인들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주체가 아닌 신에게 보이는 객체가 되어버립니다.
예술의 목적 자체가 신의 영광을 위해서죠.
위의 그림에서도 중세 시대의 그림에는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보다 신의 말씀이 더 중요했던 중세를 그저 딱딱한 시대로 바라보곤 합니다만,
이런 환경 때문에 생긴 중세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요소도 있습니다.
특히 재료, 혹은 물질성에 관해서는 중세 미술을 보면서 생각해 봄직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중세에는 빛이 중요했습니다.
빛이 있으라라고 말한 성경의 말씀처럼 신의 말씀은 빛으로 온다는 이미지가 있었으니까요.
빛은 그 자체로 신의 은총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죠.
이런 빛의 미학은 많이 배운 높은 신분의 사람이나 배움이 얕은 평민 누구에게나 잘 받아들여졌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아주 감각적인 부분이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신성을 드러내기 위한 후광과 같은 표현이 등장했고, 엄청나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Mary Magdalen announcing the Resurrection to the Apostles, St Albans Psalter, English, 1120–1145.
중세의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인 성당은 신을 만나러 가는 장소였습니다. 당연히 빛이 있어야 했겠죠.
이 당시에 엄청난 조명이 있진 않았으니 빛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치는 창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로마네스크 양식에서는 이런 빛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중을 버티도록 하기 위해 기둥과 벽을 두껍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죠.
상대적으로 창문을 낼 수 있는 여력이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Lessay Abbey, Normandy, France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내부 사진을 보면 그리 밝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Santa Maria in Cosmedin, Rome (8th – early 12th century) has a basilical plan and reuses ancient Roman columns.
아마 이때는 성당 안에 있는 샹들리에와 이런 빛에 따라서 보이는 반짝이는 성물 등을 통해서
신성한 빛을 떠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빛을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은 고딕 양식이 되면서 잘 드러나게 되는데요.
신의 영광에 닿고자 한 탓인지 찌를듯한 높이를 추구하게 되었고,
리브 볼트나 플라잉 버트레스 등을 이용해서 무게를 지지해 줄 수 있는 기술적인 기반이 생기면서
Structure of an early six-part Gothic rib vault. (Drawing by Eugene Viollet-le-Duc)
Section of Reims Cathedral showing the three levels of each buttress (1211–1275)
이전에 비해 벽과 기둥이 얇아지게 되었고,
좀 더 많은 창을 달 수 있게 되면서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방식으로 찬란한 빛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Windows of Sainte-Chapelle (13th century)
노트르담의 대성당에 있는 장미창을 비롯해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성당의 내부로 들어가 보면
높고 큰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다양한 색상의 빛을 볼 수 있죠.
전쟁을 비롯해 힘든 삶을 살고 있던 중세 시대에는 이런 교회에 들어와서 보는 찬란한 빛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South facade of Notre-Dame de Paris.
North rose window including lower 18 vertical windows
성당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엄숙함에는 이런 찬란한 빛이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Nave of Strasbourg Cathedral (mid-13th century), looking east
딱히 고딕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지 않은 현대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도 빛을 이용한 방식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가 만든 빛의 교회 같은 경우는 그 자체로 빛의 십자가를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茨木春日丘教会の教会堂である「光の教会」のシンボル、光の十字架。2006年10月9日に投稿者が撮影。
안도 다다오에게 큰 영향을 준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역시 빛으로 볼 수 있는 많은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Chapelle Notre Dame du Haut, Ronchamp
시대에 따라 양식은 변하지만, 빛을 통해서 신성함과 경건함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상에서도 교회나 성당 등을 표현할 때는 찬란한 빛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죠.
빛, 좀 더 영상 작업의 관점으로 좁혀서 이야기하자면 조명, 이 조명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겠죠. 미술과 영상 이야기를 하면서 수없이 많이 이야기를 해볼 것 같네요.
빛을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미술 작품에서 이것을 보여주기란 정말 어렵죠.
지금이야 빛을 직접 내는 디스플레이가 있습니다만, 중세에는 이런 매체가 없었던 만큼 다른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빛이 있을 때 볼 수 있는 강렬한 색에 대한 관심을 통해 간접적으로 빛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중세 미술을 보면 강렬한 색을 사용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Miniature of Saint John the Evangelist; before 1147; illumination on parchment; 35.5 cm; Avesnes-sur-Helpe (France)
Page of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 depictic the funeral of Raymond Diocrès; 1411-1416 and 1485–1486; tempera on vellum; height: 29 cm, width: 21 cm; Condé Museum (Chantilly, France)
이런 색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것은 색을 내는 재료입니다.
인류는 색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재료를 사용해왔습니다.
이렇게 색을 만들기 위한 노력, 색을 만들어내는 재료에 관한 이야기는
'컬러의 말'과 같은 책에서 더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650326
중세 미술의 강렬한 색을 보고 있다면,
보통 탁한 색보다는 채도가 높은 선명한 색, 강렬한 원색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강렬한 원색은 얻기가 힘들었죠.
물감을 섞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빛과 달리 안료는 감산 혼합이라는 방식이 적용되어
섞을수록 탁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강렬한 원색은 애당초 그 색을 가진 재료에서 오게 되는 것이죠.
무언가를 섞어서 만들 수 없고, 특정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얻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얻기 힘들면 더 가지고 싶어지고 그러면 이에 대한 가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강렬한 원색은 그 자체로 눈을 잡아끄는 매력도 있었지만, 희소성 또한 작용하여 인기가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늘이나 바다와 같이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색이지만, 의외로 파란색은 자연에서 희귀한 색입니다.
사실 하늘이나 바다가 파란 것은 빛의 굴절 때문인 것이지 파란 색소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와중에 새파란 색을 보여주는 울트라 마린은 정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겠죠.
Synthetic ultramarine pigment
울트라 마린, 바다 너머에서 왔다는 의미라고 하는데요.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온 청금석을 갈아서 만드는 안료인 만큼 가격이 엄청났습니다.
Crystals of lazurite (the main mineral in lapis's lazuli) from the Sar-i Sang mine in Afghanistan, where lapis lazuli has been mined since the 7th Millennium BCE
그러다 보니 이 안료는 성모마리아의 옷과 같이 어떤 고귀함의 상징처럼 되었죠.
The Wilton Diptych (1395–1399) is an example of the use of ultramarine in 14th century England
Madonna of humility by Fra Angelico, c. 1430. A traditional depiction of Mary wearing blue clothes.
이렇듯, 빛에서 시작한 미학은 색을 거쳐 그 색을 만들어내는 재료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갑니다.
앞서 말한 울트라마린 역시 엄청나게 비싼 안료이긴 했지만, 비싼 재료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금이죠.
특히 금의 노란색과 울트라마린의 파란색은 보색대비에 가깝기 때문에
둘을 같이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시각적인 효과도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Fra Angelico, 1433-1435
여담으로 이런 노란색과 파란색의 시각적인 대비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나 고흐의 '밤의 테라스'와 같은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죠.
중세 초기의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등을 보면, 금으로 많은 부분이 칠해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하늘이나 빈 공간으로 보이는 곳을 금으로 채운 것을 보실 수 있는데요.
사실적인 묘사와 동떨어져있지만, 천국이나 신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One of the most famous of the surviving Byzantine mosaics of the Hagia Sophia in Constantinople – the image of Christ Pantocrator on the walls of the upper southern gallery, Christ being flanked by the Virgin Mary and John the Baptist; circa 1261; 4.08 x 4.2 m
이런 재료의 미학은 문맹률이 높고, 성경에 관한 지식이 없던 평민들의 신앙심을 끌어올리는데 효과가 있었을 겁니다.
저게 다 금이래, 저 파란 물감은 금보다 비싸대, 와 저 빛나는 것 봐봐 천국은 저런 모습일까? 등등의 생각을 하게 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고 거기에 그려진 성경의 내용까지 한 번 더 보게 만들었을 테니까요.
죽음이라는 소재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은
일단 그 보석들로 인해 일단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이런 전략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For the Love of God by Damien Hirst (2007)
정리해보자면,
중세의 미술은 전반적으로 화려했습니다.
빛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빛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으니까요.
물론 재현적인 목적을 너무 무시한 나머지 지금 보면 조악해 보이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족함을 재료, 그중에서도 비싼 재료를 이용해서 물질적인 풍족함으로 채워버렸죠.
거기에 더해서 치밀한 세공이 가해진 장식 등을 통해서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갔음을 보여주었죠.
이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부러움이나 감탄을 천국에 빗대어 사람들의 신앙심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외에도 중세 미술에서 생각해 봄직한 부분은 더 있습니다. 뒤에서 조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림을 만드는데 사용한 재료, 물질적인 면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남은 이야기들은 천천히 해 보도록 하죠.)
중세가 지나고 한참 뒤에 이 부분을 정확히 잡아내어 자신의 예술에 표현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죠.
Photographic portrait of Gustav Klimt
클림트는 일생 동안 여러 가지 화풍을 그려왔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을 뽑으라면 황금 시기의 대작들이 가장 유명할 겁니다.
'키스'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The Kiss 1907–08, oil on canvas,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이런 클림트 역시 중세 시대의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런 황금시대를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로 여행에서 본 산 비탈레 성당과 산 마르코 성당에서
황금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등을 보면서 예술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죠.
Emperor Justinian and his retinue
Empress Theodora and attendants
Overview of mosaics, looking east
앞서 이야기한 키스와 함께 아델레 블로 바우어의 초상을 보면
마치 중세 시대의 미술에서 볼 수 있었던 화려함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중세 미술과 달리 얼굴 등에서는 사실적인 묘사도 포함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한 가지 생각해 볼 만한 점이라면, 둘 다 황금을 썼지만, 그 방향성은 꽤나 다르다는 점인데요.
중세 미술에서의 황금은 신앙심의 고취를 위해서 사용되었고,
기존에 있던 그리스 로마시대의 양식보다 무겁고 경직된 모습 속에서 사용이 되었다면,
클림트에게 황금은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서 사용하였고,
당신 빈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예술계의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빈 분리파를 만들면서 시도한 점이라는 것이죠.
이런 클림트의 그림에서 중세 미술에서 느낄 수 있는 화려함, 풍요로움이라는 요소는 여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진 마치 모자이크를 연상하게 하는 다양한 패턴의 무늬는
종교적이라기보단 마술적인 느낌까지 주곤 하죠.
현실을 초월한듯한 클림트의 황금 시기 그림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영상에서도 금빛을 잘 활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래도 금하면 고급 진 이미지를 보여주는 만큼 명품 관련한 광고에서 많이 활용하는듯합니다.
어릴 때 봤던 디올의 광고도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최근에 본 광고 중에 마리옹 꼬띠아르가 출연한 샤넬 넘버 5 광고에서도 금빛을 잘 보여주는데요. 달빛과 같이 어우러지는 금빛이 참 멋진 영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MqcApmS7g&feature=emb_logo
금이라는 것이 대놓고 금, 금, 금하면 자칫 촌스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위의 영상은 이런 선을 잘 지켜서 천박해 보이지 않게 명품이라는 소재를 잘 녹여낸 영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클림트가 중세의 미술에서 금을 사용한 부분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 원근법이 발명되기 이전이었던 만큼 중세 미술은 평면적인 구성을 하고 있는데요. 이런 부분 역시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는 깊이감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이야기한 현대적인 회화는 3차원 공간의 환영이 아닌 2차원의 평면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그 말을 하기 이전부터 보여주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죠.
당시는 파리를 중심으로 미술이 인상주의를 비롯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과감하게 과거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현대적인 모습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클림트는 정말 대단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중세가 현대적인 미술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보면 좋을 겁니다.
이런 평면성하면 떠오르는 영화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깊이감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깊은 심도와 인물 바로 뒤에 막힌 공간을 종종 보여주곤 하죠.
주인공의 이름이 클림트와 같은 이름인 구스타프라는 점이나 마담 D가 입고 있는 옷이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 바우어의 초상에 나오는 옷과 비슷하다는 점 이런 부분을 미루어보아도 웨스 앤더슨 감독은 어느 정도 클림트라는 화가에게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으레 그렇지만, 중세 미술, 금! 이 생각을 하다가 그냥 떠오르는 대로 이어가버렸네요.
아무래도 대단한 체계를 갖추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앞으로도 의식이 닿는 대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