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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래 Aug 12. 2021

전부 보여주거나 일부만 보여주거나_1


미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본 업은 '영상제작자' 인지라

제작 기법이나 접근 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미술 관련 작품들을 보고 영화도 보다 보니

몇 가지 눈에 띄는 점들이 있어서 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이나 영상은 렌즈를 이용하기 때문에 심도와 같은 표현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Depth_of_field



심도를 얕게 해서 내가 원하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고,

심도를 깊게 해서 프레이밍 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겠죠.


물론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나누는 방법이 심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구도와 관련해서 넓은 공간을 보여주면서 주 피사체를 작게 보여 줄 것인지,

주 피사체에 집중해서 크게 보여줄 것인지 역시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다가 카메라와 렌즈가 나오기 전 그림에서는

원하는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접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다 보니 서로 다른 접근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완벽하게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작가가 구도를 완전히 생각해서 그릴 수 있는 만큼

어떤 것을 보여줄지에 관한 고민이 더욱 많이 해보게 될 겁니다.


에코와 나르키소스 - 윌리엄 워터하우스 1903 / 나르키소스 - 카라바조 1600


위의 그림은 둘 다 나르키소스를 그린 그림입니다.

둘 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하는 장면을 그렸지만,

좌측의 그림은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반해

우측의 그링은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만을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바울의 회심 - 루벤스 1614 /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의 회심 - 카라바조 1600


위의 두 그림도 마찬가지로 바울의 회심을 담고 있습니다.

말에서 떨어져서 하늘을 보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주제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황과 이야기를 다 담을 것인지

아니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만 강렬하게 담아낼 것인지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그려내더라도, 어떤 그림을 보면 엄청나게 자세하고 세부 묘사가 뛰어납니다.

반면 어떤 그림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죠.


샷의 크기나 구도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고,

원치 않는 부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자 했던 그림과

과감하게 감춘 그림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두 가지 그림 중 어떤 것이 더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먼저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자 했던 그림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북유럽 지역에서 드러난 특징들을 이야기해보면

오늘 이야기해보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인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 세 명의 천재겠죠.

이들은 피렌체에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교황령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교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을 그려야 한다면, 주로 신과 성인 등을 주제로 그리게 될 텐데

이런 성스러운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투박하게 그리는 것은 어색할 수 있겠죠.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을 겁니다.


이 천재들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내기 위해 원근법과 해부학 지식을 쌓았습니다.

원근법은 브루넬레스키부터 시작해서 마사초 등을 거쳐서 점점 발달하게 되었는데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전에 쓴 글이 있으니 이 부분을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ahisfy/222243147452



여기서는 해부학적인 지식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진행해보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스케치입니다.

특히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는 시체를 엄청 해부해가면서까지

인체에 관해서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하죠.



특히나 소묘 자체에 엄청 신경을 써왔었습니다.

레오나르도 같은 경우는 미완의 그림이 많지만, 소묘의 양은 엄청난 것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색보다는 선에 더 집중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면서

색채 감각은 뛰어나지만 소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는데요.

그만큼 소묘에 더 큰 비중으로 두고 그림을 바라봤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나 이 중에서도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조각가라고 했던 만큼

마치 조각과 같이 윤곽이 정확히 드러나는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등의 그림에서도 이런 모습을 잘 볼 수 있죠.

근육이나 관절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림보다는 조각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시스티나 천장화 중 일부 1508 - 1512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맞나 싶습니다...)


이러한 풍부한 묘사력은 라파엘로가 그린 갈라테아나의 승리나

시스티나의 성모와 같은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근육이나 옷의 질감 표현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이 납니다.

갈라테아의 승리 1511 / 시스티나의 성모 1503


(3대 천재 화가라고 하지만, 라파엘로는 다른 두 명보다 어렸죠. 늦게 와서 빨리 가긴 했지만...

아무튼 근육이나 옷 주름 같은 표현을 보면 레오나르도의 그림보다는 뭔가 박력 있는 표현이 보이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두 거장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정말 풍부한 표현력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옷의 세심한 주름이나 빛이 비치는 부분 등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오죠.

앞서 이야기한 내용 중에서 감추기보단 다 보여주는 그림에 가깝습니다.

특히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전부 보여주기 방식의 정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근법과 해부학의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의 특징을 잡아서 보여주는 능력은

봐도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 저런 배치와 표현들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니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는데요. 레오나르도의 소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레오나르도는 나머지 둘에 비해서 소묘 이상의 분위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아래 두 그림을 보면 확실히 다른 두 거장의 그림과는 달리 일부만 보여주기라는 점이 잘 보이죠.

그러다 보니 다음 글에서 더 많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암굴의 성모 1483-1493 /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1490



물론 최후의 심판(1492-1498)과 같은 그림을 보면 레오나르도 역시 전부 보여주기의 방식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배경을 정리해놓았고, 이 그림을 제외하면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대부분 3명 내외의 소수의 인원이 나오는 편입니다.



미술사에서 르네상스를 다룰 때 이탈리아와 북유럽 르네상스를 비교하곤 하는데요.

오늘 말씀드릴 다 보여주기는 북유럽에서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북유럽 지역은 좀 더 덜 거룩한(?) 그림들을 많이 그린 편입니다.

교황청이 상대적으로 멀어서 종교적인 거룩함을 따지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무역 등에 힘입어 부유했던 곳인 만큼,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싶었던 상인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남기거나 일상의 모습을 그린 풍속화 등이 많이 발전했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고 볼 수 있겠죠.


이와 비슷하게 두 지역을 바라보던 방식을 가지고 이야기해본 글이 있는데요.

관심 가지고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ahisfy/222219755405



북유럽 르네상스 하면 떠오르는 화가들 중에서 전부 보여주기를 이야기한다면

얀 반 에이크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1434) 의 세부 묘사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죠.



여기에 담긴 많은 상징 등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죠.

이에 관해서는 잘 설명하고 있는 곳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좌측에서 볼 수 있는 거울에 비친 작가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은 정말 참신한 것 같습니다.

구도의 참신함이나 작가 자신을 그림에 녹여내는 능력에서는 시녀들(1656)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림입니다. 심지어 저 그림은 1434년 그러니까 시녀들 보다 200년을 앞서서 그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죠.



아무튼, 이렇게 수많은 상징이 담기다 보니 이 그림은 단지 보는 그림이라기보단

읽어야 하는 그림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전체를 보면서 주제를 보고, 세부적인 부분을 보면서

더 설명하고 싶어 하는 부분들을 읽어나가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한 묘사를 할 수 있게 된 데에 유화의 발명도 큰 몫을 했겠죠.


그렇다고 많은 볼거리를 넣어서 읽도록 만드는 방식을 얀 반 에이크가 선도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의외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왔던 방식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 베리공의 매우 호화로운 기도서(1412-1416)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이나 사물을 굉장히 자세히 그렸다고 보이지만,

원근법이나 인체의 해부학적인 지식이 없이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얀 반 에이크는 이렇게 다양한 것을 보여주는 그림 속에

원근법과 해부학적인 지식 거기에 유화라는 특성을 이용해 최대한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내었던 것이죠.

의외로 연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얀 반 에이크가 대단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많은 정보를 주는 전부 보여주기 방식이 유럽 북부에만 사용되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서 보여주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5)과 같은 그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 역시 상징이 많이 사용된 그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티첼리만 하더라도 르네상스 초창기의 화가였던지라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중세 특유의 많은 상징을 사용하는 방식에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징들이 오히려 3대 천재의 그림에서는 조금 줄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원근법과 해부학을 연구하면서 비례적인 균형미를 추구하던 이들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요 피사체에 더 집중한 그림이 많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테네 학당이나 시스티나 벽화를 보면 이들이 이걸 못했다기보단,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피렌체에서는 3대 화가의 시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선택과 집중으로 가는 방향이 생겼다면,

반면 앞서 보신 얀 반 에이크의 그림처럼

유럽 북부의 그림에는 여전히 다양한 볼거리가 넘치는 그림을 찾아보기 쉽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에서도 이런 부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과 같은 그림(1490~1510)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엄청 재미있습니다.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요. 정말 독특한 상상력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보스가 그린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 역시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합니다.



이 외에도 북유럽의 브뢰헬이 그린 풍속화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 (1560) 과 같은 작품은 이 자체로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사실적인 묘사가 가득한 그림이죠. 하단에 있는 굴렁쇠나 말뚝박기 정도는 금방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금 방향은 다르지만, 예전에 청계천에서 정조의 행차를 그린 능행반차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요.

한참을 뜯어봤던 기억이 납니다. 다양한 사람이 나오는 그림은 그냥 소소하게 보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월리를 찾아라를 볼 때도 월리는 안 찾고 이것저것 구경만 하기도 했었습니다.



네덜란드 속담(1559) 이라는 그림도 좋아합니다.

네덜란드 속담 자체는 모르지만 뭔가 독특한 행동들이 각 속담들을 묘사하는 것이겠죠.

좌측 하단에 머리를 벽에 박는 사람이 있는데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의미일까요?



다만,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원근법이나 인체의 묘사 면에서는

오히려 앞서 봤던 이탈리아의 3대 천재 화가들만큼의 엄밀함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그림은 조금 허술한 듯한 것도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그림을 소개했지만,

꼭 많은 사람이 나와야만 볼 거리가 많은 그림은 아니겠죠.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풍경(1558)도 보면서 재미있어했던 그림입니다.

이카로스가 추락하면 해 근처겠거나 했는데 정작 이카로스는 우측 하단에 이미 빠져서

다리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고요.

심지어 꽤나 가까이 있는 듯한 낚시꾼조차 무시하고 있습니다.

찾아보니 네덜란드의 '사람이 죽었다고 쟁기질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속담을 표현했다고도 하는데

뭔가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헛웃음이 나오는 그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그림들은 세세하게 뜯어볼수록 재미있는 그림인데요.

앞서서 이야기한 르네상스 3대 거장의 그림과는 꽤 많은 차이를 보여줍니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렸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인체의 비율이 이상한 경우도 종종 보이고, 원근법 역시 엄격하게 지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렇다고 이런 그림이 나쁜 그림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단지 똑같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내용을 말해주고 있는 것

그 자체로도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한 장으로 보는 앨범과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풍부한 묘사가 있는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세심하게 뜯어보는 재미가 있죠.

영화도 미장센이 풍부한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미술에서도 이런 관점이 적용되나 봅니다.


맨 처음에 심도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촬영할 때도 망원 렌즈보다는 광각 렌즈 쪽을 더 선호하고,

얕은 심도보다는 깊은 심도를 선호하는 성향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광각 렌즈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레버넌트를 정말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이전에 영화를 분석했던 영상이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youtu.be/lxJ31jUB_34



색보정이라는 작업을 많이 하는 만큼, 이미지 전체를 뜯어보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볼 거리가 많은 이미지를 선호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묘사가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죠.

영화 중에서도 너무 미술에 공을 들이다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혹평을 듣는 영화도 있습니다.


특히나 한 장으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 그림에서의

다양한 묘사는 강렬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전부 보여주기보다 일부만 보여주는 방식을 이야기해보려고 하는데요.

전부 보여주기에서 느끼게 되는 아쉬움이 조금은 해결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도 디테일한 묘사 자체가 가지는 힘은 무시할 수 없으니 이런 점을 잘 알고 이미지를 보면 좋겠죠.

저 같이 영상 제작을 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기보다

양쪽의 장단점을 알고 필요할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여기에 추가하는 것이 좋을지 따로 글을 쓸지 고민해 봤습니다만,

전부 보여주기를 좀 더 확장해서 세부를 더 꼼꼼하게 보여주기까지 이야기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여기에 이어서 써보기도 했습니다.


현대에서도 묘사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압도적인 디테일을 보여주는 중형 판형 사진이나

혹은 대형 TV에서 보이는 엄청난 디테일을 보면 압도되는 느낌과 함께 감동도 받게 되죠.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99cent store를 보면서 낯설게 하기라는 효과와 동시에

엄청난 양의 디테일은 여전히 강한 힘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거대한 묘사 외에 세부적인 묘사의 힘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사진이 생기고 점점 사진의 해상도가 올라가면서

디테일한 묘사는 미술보다 주로 사진의 영역이 되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여전히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가와 같이

사진 이상의 묘사를 보여주는 보여주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고요.


얼마 전에 마르첼로 바렌기 전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요.

사진이 있는 시대에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묘사가 가지는 힘에 관해서는 생각해 볼 것이 많았던 전시였습니다.

http://www.popcond.com/page/shop/program_view.php?it_id=1616054437



어찌 보면 감동을 받는다기보다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만,

풍부한 묘사가 힘이 있다는 점을 느끼기에는 좋았던 전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YwVj9vsS5k&t=1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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