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치 Mar 17. 2018

서툰 시간의 고해

그러니까 작년 11월, 3년간 써온 휴대폰을 바꿨다. 시기 상 아이폰 8이 나온지 얼마 안 되었고, 엑스 출시가 이슈로 회자되던 때였다. 내가 썼던 기종은 용량 16G짜리 아이폰6였다.

잔 상처 하나없이 말끔한 휴대폰을 보고, 직장동료며 친구들이 핀잔을 주면 “이거 16기가야.” 하고 대답했다.  나의 사치를 꼬집는 눈총이 경악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16기가는 애먹여 설명할 필요도 없는 타당한 이유라는 것을 그렇게 깨달았다.

애당초 왜 그런걸 샀느냐고 묻는 말에 그냥 겸연쩍어 웃었다. 당장 하루이틀 전의 일도 가물가물한 마당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걸 샀는지 따위를 기억하고 있을리 없다.
별 고민없이 샀겠지. 그때도 난 분명 둑 터진듯 쏟아지는 ‘전국에서 제일 싼집’, ‘스팟할인’ 같은 현란한 광고에 진이 빠져, 첫 눈에 들어온 게시글을 클릭해 일을 끝냈을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그랬다.
누가 알려주면 그대로 따라하긴 했지만,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대로 손해보고 살았다. 스스로 뭘 따져보고 비교하는데엔 영 소질이 없어, 정찰제가 아니면 제값도 모자라 웃돈을 주고 사는 일도 빈번했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호구네, 호갱이네 하며 안타까움 섞은 지인들의 놀림도 허허 웃어넘겼다.

나라고 아쉬운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그저, 요리사가 비행기를 몰지 않고 용접공이 사람을 고치지 않듯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내 영역 밖의 일이라고 여겼을 따름이었다. 운좋게도 때마다 누군가 손을 뻗어 주었고, 나는 기꺼이 그 손을 잡았다. 별 어려움 없는 삶이었다.





어떤 의미로 성인이 되고난 뒤에도 여전히 호구인 나는 최근에 조금 변했다.
여전히 전자기기나 재테크분야라면 종양수술만큼이나 아는게 없지만, 어려워하면서도 공부하고 알아보는 일을 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마 그것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이제는 도와줄 이가 없다는 깨달음, 그 이후가 아닐까한다.

나에게 성인이 갖는 그 어떤 의미란, 죽어도 못할 것 같았던 일들을 군말없이 해내는 것이다.
바퀴벌레를 잡고, 집주인과 싸우고, 내 미래를 고민하는 등의 고문같은 일들.
더는 떠넘길 수 없는 일들에 익숙해지기까지 울고, 외로워하고, 좌절했던 시간들이 스친다.

이제 나는 그런 일들로 울지 않는다.
내가 쌓아온 서른살 만큼의 경험치덕분에 적어도 이만큼은 감내할 수 있는 서른한살이 되었다.

올 한해, 내가 결심한 경험치를 쌓기위해 부단히 노력할거다. 누구의 도움없이도 산을 넘기위한 경험치를. 그러고나면 또 그만큼의 경력이 쌓여 서른두살의 나를 이끌어가겠지.



2018.03.16. 밤. 많이 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