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어둠, 자경단 사건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by 안영진 변호사


나는 그날 밤, 아무것도 모른 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다 그렇듯,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는 소통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내 친구가 다급하게 보낸 링크 하나는, 내가 디지털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그 링크는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 조직에 대한 기사였다.


'자경단' 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이었다. 스스로를 '목사'라고 칭한 30대 남성 ㄱ씨가 주도한 이 조직은,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4년 8개월 동안 무려 234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범죄 집단이었다.


피해자들 중 159명이 10대 청소년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중에는 물리적 성폭력을 당한 이들도 있었다. 조직의 철저한 계급제 운영 방식과, 피해자들의 심리적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수법은 내가 상상하던 디지털 범죄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엔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나는 친한 친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사진을 몰래 찍어 텔레그램에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처음엔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곧 그 사진이 잘못된 방식으로 편집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두려움과 수치심에 몸을 떨었고, 나는 그저 그녀 곁에서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디지털 세상에서 벌어지는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지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의 문제가 아니었다. '집사', '전도사'와 같은 역할을 부여받은 조직원들이 있었고, 이들은 명령 체계 속에서 범죄를 체계적으로 실행했다.


제작된 성착취물은 1,546건에 달했고, 이 중 427건은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피해자들은 협박당했고, 딥페이크 기술이 동원되어 더 큰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이 현실이, 디지털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조직화되고 기술화되면서 새로운 법적 쟁점들을 던져주고 있었다.


범죄단체조직죄로서 이 조직을 단죄할 수 있을지, 청소년성보호법과 성폭력처벌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딥페이크 같은 신기술 악용 범죄에 대한 법적 공백은 어떻게 메워야 할지, 이런 모든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무엇보다 피해자 중 일부가 협박당해 가해자로 전환된 사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몇 달 후, 나는 직접 피해자 지원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지역 단체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프로젝트에 자원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피해자는, 자신의 사진이 온라인에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절망을 털어놓았다. 그는 가족에게 알리기도 두려웠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망설였다.


하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우리 단체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와 상담을 하며 나는 피해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n번방 사건 이후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무엇인지를 드러냈다.


조주빈이 징역 42년, 문형욱이 징역 34년을 선고받았던 것처럼, 법의 단죄는 분명해졌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은 남아 있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텔레그램이 처음으로 수사기관과 협력해 자료를 제공한 사례는 큰 진전이었지만, 이런 협력이 모든 플랫폼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고민했다. 피해자들의 아픔과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를 넘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디지털 성범죄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였다. 우리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며, 동시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법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겪은 고통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나는 내 자리에서 작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물 삭제 요청을 돕고, 피해자들의 법적 대응을 지원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심리적 도움을 연계하는 데 내 시간을 쓰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더 이상 혼자서 고통받지 마십시오." 이 문장이 내게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고,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법은 피해자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삶을 다시 일으키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나는 믿는다. 우리가 이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하며, 변화를 만들어낼 때, 디지털 성범죄는 더 이상 누구의 삶도 망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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