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이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는 법조계에서도 중요한 쟁점입니다. 창원지방법원 2020고단2378 판결은 무면허 및 음주 전력이 있는 운전자가 자율주행 기능을 과신하여 사망 사고를 낸 사례를 통해, 현재 상용화된 주행 보조 시스템의 법적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고속도로 1차로에서 주행 중이던 피고인이 자율주행 모드를 켠 채 휴대전화로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도로 전방에는 공사를 위해 화물차가 정차 중이었고 작업자가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으나, 피고인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은 자율주행 모드 중이라 하더라도 운전자에게는 여전히 전방 및 좌우를 살피고 제동 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시스템이 정차 중인 물체를 완벽히 식별하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단계에서 운전자가 시선을 휴대전화에 고정했다는 사실은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법리적으로 더욱 엄중하게 다뤄진 이유는 피고인의 인적 결격 사유에 있습니다. 사고 당시 피고인은 면허가 취소된 무면허 상태에서 약 30km 구간을 주행했습니다. 과거 두 차례의 음주운전 처벌 전력이 있었으며, 이 사건과 별개로 혈중알코올농도 0.143%의 만취 상태로 운전했던 건이 병합되어 심리되었습니다.
법률적으로 무면허 상태에서 주행 보조 기술에 의존해 운전대를 놓는 행위는 단순 과실을 넘어 준법의식의 현저한 결여로 해석됩니다. 반복되는 음주운전 이력은 양형 단계에서 피고인에게 매우 불리한 가중 사유로 작용했으며, 법원은 이를 통해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을 심도 있게 검토하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사망 사고라는 중한 결과와 화려한 범죄 전력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입니다. 형사 재판에서 피해 측의 처벌불원 의사는 가해자의 신분을 구속하는 대신 사회 내에서 자성할 기회를 부여하는 핵심 지표가 됩니다.
또한 피고인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 재범 방지를 위해 운행하던 차량을 처분한 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는 점 등이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되었습니다. 이는 실형을 통한 격리보다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를 통한 교화가 적절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현재 상용화된 대부분의 차량에 탑재된 자율주행 기능은 기술적으로 레벨 2 수준인 주행 보조 시스템입니다. 이 단계에서 사고의 모든 책임은 인간 운전자에게 귀속됩니다. 법원은 기술이 운전의 편의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사고 발생 시 운전자의 주의의무를 면제하거나 과실 비중을 줄여주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의 관점에서 볼 때, 기술적 결함이 증명되지 않는 한 시스템 작동 중의 전방주시 태만은 운전자의 치명적인 법적 약점이 됩니다. 특히 고속도로 공사 구간과 같은 비정형적 상황에서 시스템의 완전성을 신뢰하는 것은 법률상 '허용되지 않는 위험'을 감수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자율주행 시대의 운전자가 갖춰야 할 법적 지위를 재확인해 줍니다. 운전자는 시스템의 사용자이기 이전에 도로 위의 통제권을 가진 최종 책임자입니다. 무면허나 음주운전과 같은 원천적 위법 상태에서 기술의 편리함을 오용하는 행위는 사고 시 가중 처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도로는 시스템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움직이며, 그 균형이 깨지는 순간 법적 책임이 발생합니다. 자율주행 기능을 사용하는 운전자는 해당 기술이 '보조'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전방 주시라는 기본적인 업무상 주의의무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