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하나, 오늘 밤 우동을 한 그릇 더 먹는 거였다'
항구에 내리자 마자 우동을 사먹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다시 우동을 사먹었다. (그리고 미리 말하자면,내일도 종일 우동만 먹게 된다.) 마치 우동에 한이 맺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튼 저녁으로 먹은 두 끼의 우동은 맛있었다.
첫 번째는 항구에 내려 가장 가까운 우동집을 구글맵으로 찾아서 갔는데 메리켄야(めりけんや)라는 곳이었다. 붓가케 우동을 시켰다.
참고로 일본에서 우동을 주문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메뉴와 사이즈를 주문한다. 그러면 직원이 면과 국물이 담긴 그릇을 준다.
2. 셀프바에서 튀김가루, 파를 취향껏 토핑하고 사이드메뉴를 고른다.
3. 계산 직원이 내가 고른 메뉴를 빠르게 스캔하고 금액을 말한다. 지불. 끝
이 시간이 보통 3분을 안넘는다. 햄버거를 뛰어 넘는 극강의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다. 메리켄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신속했다. 붓가케 우동 대자에 유부와 반숙계란, 야채튀김을 얹어 먹었다. 들어간 지 10분만에 그릇을 싹 비우고 우동집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자, 이제 내가 뭘 해야할까?
결론은 하나, 오늘밤 우동을 한 그릇 더 먹는 거였다. 우동현에 여행 왔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의식이 나를 지배했다.
저녁 8시에 오픈하는 카레우동 맛집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시간은 6시, 나는 기다리기로 하고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기다릴 시간을 고려하면 벤티 사이즈를 주문해야 했지만 배가 부를까봐 숏 사이즈로 주문해 자리에 앉았다.
둘러 보니 역시 이 곳은 혼자 앉는 좌석이 많다. 대부분이 마주 보는 테이블로 구성된 한국과 달리 바(bar)가 있었고 마치 기차역 대합실처럼 앞으로만 바라보는 의자들이 벽에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독서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카페가 조용했고 소곤소곤 대화하는 사람이 많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국민성이 발현되는 공간이다. 더불어 내가 가 본 스타벅스 중 가장 남성비율이 높은 매장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 동네 남자들이 커피를 좋아하나 보지.
이윽고 8시가 되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내가 간 곳은 츠루마루(手打ちうどん鶴丸)라는 곳이었다. 중심가인 라이온도리에서 동쪽으로 벗어난 지점에 위치해 있다. 특이하게도 이 집은 저녁 8시에 오픈해서 새벽 3시까지 장사하는 집이다.
어디 한 번 나를 만족시켜봐,
라는 거만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입장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이런 분위기의 식당은 맛집이 아닐래야 아닐 수가 없다. 8시 5분, 이미 자리는 만석이었고 간신히 바에 난 자리에 끼어 앉았다. 한 아저씨는 반죽을 치대어 자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면을 삶았다. 면을 건져 올릴 때마다 증기가 확 퍼졌다.
서빙 직원에게 나마비루와 카레우동을 주문했다. 이미 내 양 옆의 남자와 여자는 카레우동을 고독하게 먹고 있었다. 나는 고독한 미식가가 된 심정으로 우동을 한 젓가락 들었다. 진한 카레 국물이 혀에 닿았고 곧이어 뜨거운 면발이 마치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입 안을 휘저었다. 과연, 지금껏 맛보지 못한 카레우동이었다. 시원한 맥주로 입을 식히며 다음 젓가락을 들었다. 진하지만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밸런스를 잡은 카레와 손으로 뽑아 굵기가 들쭉날쭉한 우동면의 조화가 잘 되어 있는 한 그릇이었다. 다 먹고 둘러 보니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는 그 새 계산서 위에 돈을 놓고 나갔고, 왼쪽에 앉은 여자는 다 먹고 남은 국물을 계속 떠 마셨다. 나도 뭔가 아쉬워 메뉴판을 넘겨 보다가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 계산을 하고 나왔다.
어두운 밤길을 꽤 오래 걸어 숙소에 돌아 왔다.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떠올려 봤다. 만족스러웠다. 다만 내 기억이 배를 타고 오기도 전에 정신이 끊어질 것 같았다. 피곤이 몰려 왔다. 오늘은 창문을 닫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