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오지 않았겠죠. 지하로”
폭우가 쏟아지면서 다른 아이템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아 급하게 선택한 아이템이었다, 반지하-
이미 많은 기자들이 다녀간 반지하 피해 현장에 가서 어떤 그림과 영상을 찍어와야 할까 고민을 하며 상도동으로 향했다. 과거 취재로 쪽방촌도 가고, 구룡마을도 갔다 왔지만, 사망자가 나온 주소를 찍고 내린 곳은 그저 평범한 시장 한복판이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반지하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으니 “어디든 한 골목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 반지하예요”라고 동사무소 직원이 한심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동사무소를 나와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가니 모든 빌라 아래엔 반지하 창문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앞엔 뉴스에서 자주 본,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가전제품 등 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렇게 익숙한 풍경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건 바로 냄새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반지하에서 수해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역류하는 건 하수관이다. 변기와 싱크대에서 물이 역류하니, 오물과 곰팡이 냄새가 함께 만나 지독한 악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거 쪽방촌에서 마주한 노인분들은 외로움이 익숙해 보였고, 구룡마을에 거주민들은 가난이 익숙해 체념 섞인 말들로 나와 인터뷰를 했다면, 내가 만난 반지하 거주민들은 우리 일상에서 매일매일 만나는 그런 분들이었다. 외로움도, 가난도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고, 그 직장에서 먼 경기보다는 서울을 택한 사람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사는 환경은, 수해 전 모습을 상상해봐도, 너무나도 열악한 모습이었다. 바닥 콘크리트가 뜯겨 나간 자리엔 드문드문 스티로폼이 보였다. 습기가 가득 차니, 이를 조금이라도 방지하려고 그렇게 짓는다는데, 그렇다 보니 견고해야 할 바닥엔 그렇게 스티로폼이 드러나 있었다.
수해를 입은 한 여성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얘기를 했다.
“주위에서 ‘너 이제 지하에서 나와야 하는데’라면서 걱정하죠. 그런데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오지 않았겠죠, 지하로”
정부의 지원 대책에도, 앞으로 반지하를 벗어나길 힘들 거란 체념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실제로 영화 <기생충>의 흥행으로 정부는 2020년부터 반지하 거주민 대상으로 이주지원 사업(주거상향지원 사업)을 벌여왔는데, 지난해 이를 통해서 지상으로 옮겨간 가구 수는 서울 기준, 반지하 거주민의 0.3%에 불과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반지하에서 나오는데, 계단에는 비에 젖은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몸만 겨우 빠져나오는라, 휴대폰도 들고 나오질 못했다. 이제 모두 쓸 수 없게 됐다”며 그가 아깝다고 언급한 건 다름 아닌 ‘가죽 신발’이었다. 너무 아깝다고 생각나는 귀중품이 목걸이나 반지가 아닌 신발이란 게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정부는 이번 수해로 반지하를 앞으로 순차적으로 없애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또 임대주택으로 이주하는 걸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와 정반대로 뉴욕에선, 앞으로 불법인 반지하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고, 오히려 불법인 반지하 거주지를 합법화하고 안전 지원하겠다는 대책이 나왔다.
현실적이란 생각이 든다. 반지하를 없애고 지상으로 이주시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엔 반지하 거주민들은 서울만 해도 20만 가구가 넘고 한 해 공급할 수 있는 임대주택의 수는 서울 기준 2만 가구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꼬박 반지하 거주민들에게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희박한 확률의 임대주택 보단, 그들에게 더 안전한 거주지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가난이 참 잔인하단 생각을 했던 날이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기사 링크-
https://v.daum.net/v/20220814182904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