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직장인의 안식월] no.1

생애 첫 안식월

by 안지현

직장 생활 15년 차에 처음으로 안식월이라는 걸 보내고 있다. 언제 얼마나 멋지게 쓸지를 거의 1년 동안 풀지 못한 숙제처럼, 아직 열어보지 못한 보물상자처럼 그렇게 지니고만 있다가 9월이 이틀 남은 시점에 갑작스럽게 쓰기로 결심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쭉 쉰다는 건, 직장인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이고, 나 역시 근속 13년을 채우고서야 생애 최초로 경험하게 됐다. 그래서 더욱 힘을 주고 쓰고팠던 나의 안식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스터디 카페다. 스터디 카페에서 안식월을 보내는 내 모습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석사 학위 논문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한 나를 일 년째 보던 내 동거인은 ’어차피 은퇴하면 매일이 안식월‘이란 말로 나를 과감하게 만들어줬다.


휴가를 가면 ‘오늘이 첫날, 둘째 날…’이라며 머릿속으로 계산하게 되는데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여행이라면 적어도 2주 정도는 날짜를 세어보지 않고 살아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내 팔자에는 아직인가 보다. 그런데 막상 하루 종일 독서실 같은 곳에 있어보니, 생각보다 하루 종일 뭔가를 집중하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됐다. 마치 실시간으로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카카오톡으로 대화도 활발히 하면서, 또 때론 전에 없던 식탐의 노예가 돼 틈틈이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서 그렇게 촘촘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보니,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렇게 석사 논문도 다 쓰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 버리면 어쩌지. 두려움 끝자락에서 안식월에 꼭 지키고 싶은 활동들이 생겨났다. 가장 우선되는 건 석사 논문 완성이겠지만, 이 외에 하고 싶은 건, 매일 운동하기, 몸에 되도록 좋은 음식 먹기, 그리고 7살 딸아이와 매일 산책, 그리고 가슴 설레는 일을 하나씩 일과에 끼워넣기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퇴근할 때 아무리 보람된 일을 하고 와도 지침이 있고, 그런 와중에 가슴 설레는 일까지 찾아서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저 남은 에너지를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이모님과 보냈을 딸아이에게 쏟기 바빴다. 그렇게 하루는 잘도 갔고, 침대에 누우면서 ‘오늘도 논문을 쓰지 않았구나’며 패배감을 느끼며 잠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꼬박 일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 안식월에 논문을 쓰다 보니 (비록 논문이라는 글짓기이지만) 내가 얼마나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그런 작업을 얼마나 설레어했는지를 알게 됐다.


논문을 어서 마치고, 진짜 쓰고 싶었던 글들을 쓰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그 시작으로, 브런치에 오랜만에 안식월을 핑계로 글을 남긴다.


오늘도 하루를 꽉 채워서 산 직장인들.

그리고 자식 생각하며 미안한 맘으로 퇴근하면서 두 번째 출근을 하는 부모님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퍼센트] "명품 선택 이유는 '불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