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잦은) 일탈_생애 첫 북콘서트 참여
북콘서트를 사실 처음 가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 번도 제대로 가보지도 않고, ‘내가 북콘서트란 걸 열었었구나.’ 그런 나도 봐주러 온 독자들에게 고마웠고, 미래의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덜 미안하고자 거장인 김애란 작가의 북 콘서트의 내용을 경청했다.
가장 큰 특징은 북 콘서트지만 김애란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문장이 ‘문어체’라는 점이었다. 방송 기자라 글도 구어체로 써 버릇하는 내가 듣기엔 생경한 경험이었다. 형용사 하나마저도 계산되고 적확한 느낌의 문장들을 말로 쉴 새 없이 열거하는 김애란 작가의 모습에서 완벽주의를 보는 듯했다. 어쩌면 한 편의 책을 오디오 북으로 듣는 것처럼 완결성이 있는 그의 북 콘서트에서 흔들림 없는 작가의 말투와 달리, 나는 킥킥 웃음으로 시작해 혼자 눈물을 흘리며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그렇게 두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자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때론 따듯한 말보다 불편한 말이 더 위로할 수 있다며 박완서 작가의 말을 소개한 부분이었다. 배우자의 죽음에서는 슬픔 속에서 ‘감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자식의 죽음에서는 그 마저도 없었다는 표현이었다. 김애란 작가는 그 문장은 잔인할 수 있지만, 진실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에겐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지금의 다매체 시대를 언급하면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시대’라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저마다 주인공인 삶은 많지만 그 어느 때보다 소외와 자아 중독을 느끼며 ‘주체가 되는 삶’이 적다는 표현이었다. 훌륭한 작가들은 이렇게 사회 현상을 그 시대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하는구나, 부러웠다.
그리고 이어진 사인회. 저자의 사인을 받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문학 소녀이자, 문화부 기자인 회사 동료의 이름을 포스트잇에 써놓고 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동료는 필요 없다고 한사코 ‘네 이름으로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갑자기 맘을 바꿔 딸아이 이름을 작가에게 내밀었다. 묻지 않았지만, ‘제 딸 이름이에요’라고 소개했다. 김애란 작가는 웃으며 ‘학생처럼 생겼는데 딸이 있다니요’라고 답을 했다. 신이 나서, 오늘 느낀 감정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그렇게 오늘 거장과의 만남, 생애 첫 북 콘서트 참여로 하루를 마쳤다.
오늘 하루 만치의 석사 논문 완성도 어쩌면 늦춰질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