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차 직장인의 첫 안식월] no. 3

나이테처럼 쌓인 요가

by 안지현

교수님으로부터 청천벽력의 메일을 받았다. (이따위라면) 예심에 내 논문을 넣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심장이 뛰어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 파괴력 있는 메일이었다. 부족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부족하단 말인가. 얼굴이 화끈거렸고, 이번 학기를 넘기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일상의 모든 기름기는 빼야 하는 상황. 안식월도 겨우 17일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몇 개 없던 약속도 정리하고, 운동 스케줄과 도서관 일정만 남겨놓았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하는 운동은 논문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거라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 6시 50분, 아쉬탕가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를 하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아쉬탕가를 매주 1회씩 하기 시작한 건 3년 전. 요가 자체를 처음 시작한 건 2019년, 그러니깐 6년 전이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내 보잘것없는 아쉬탕가 요가 수련 자세에도 그동안 나를 스쳐간 요가 스승들의 가르침이 아주 희미하게 남겨져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맞다, 이 때는 손을 온전히 바닥에 닿게 하랬지, 이럴 때 발 끝을 몸 쪽으로 당기랬지, 귀 어깨는 멀리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스쳐가는 생각들. 그 가르침을 준 스승들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단 생각이 들면서였다.


요가를 하면서 또 느낀 점이 있다면, 내가 얼마나 업무 외적으로는 관대한 사람인지도 알게 됐단 점이다. 요가 자세가 잘 되지 않아도 조바심이 난 적이 없고, 늘 되는 만큼 더 욕심내지 않아도 마음이 평온했다. 그래서 발전은 더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3년 만에 다시 요가원을 찾은 선생님이 못 본 사이에 많이 단단해졌다는 한 줄 평을 남겨줬다. 다른 사람이 눈치챌 만큼의 발전은 없다고 생각한 내 요가 실력이었는데, 그 말로도 너무 기뻐할 만큼 나는 요가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오늘 도서관에서 나서면서 떠올렸다. 어쩌면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논문은 내게 실패로 남겠지. 이제 제법 같이 알고 지낸 시간이 쌓인 선배는 그런 나를 보면 ‘지팔지꼰’(지 팔자는 지가 꼰다)이라고 했다. 맘에 걸렸는지, 돌아가는 길에 ‘하고 싶은 거 하는 사람들이 오래 산대’라는 메시지도 남겨줬다. 피식 웃음이 났다. 웃음기 없는 내일의 나를 맞이하겠지만 내 일상에도 요가처럼 여러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쌓여 조금은 단단해지길, 그리고 요가처럼 그런 일상을 보라보는 내 시선이 관대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