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원래 나는 대중문화에 부정적이었던 유교보이였다. 그런데 걸그룹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라는 곡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가사가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아니었다. '여자친구'가 구축한 락발라드라는 장르의 사운드가 너무 좋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노래로 문간에 발을 들여놓다 보니 어느새 그룹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힘든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극도로 엄격해졌던 시기에는 '여자친구'를 내 유일한 도파민 공급처로 삼았었다. 아무튼 "시간을 달려서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이라는 질문(가사 중 일부)에 답해보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주변에는 외향적으로 보였지만 사실 엄청 내향적인 학생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여러 이유로 '내 본분은 공부'라는 가치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착실한 이미지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항상 혼자 발표하고 반장도 도맡아 하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갈구하는 학생이었지만, 사실 굉장히 자존감이 낮고 어수룩했다. 그래서 반장으로서 반 분위기에 혼란을 야기하는 질풍노도를 달리는 사나운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중학교 시절까지도 내가 반장이었을 때 분명 학교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이 왕왕 있었다. 나는 망할 공감능력 때문에 나 역시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한 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사안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학교에서 시달리고 돌아온 집에서는 어쩌면 더욱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학교와 집 모두에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고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했다. 그래서 내가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 입시에 사활을 걸었다.
막상 입학하고 나서는 우울증으로 내내 보건실에 누워있었고 친구를 만들 여력도 없었다. 또 소화가 안되어서 공부하는 것이 고역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는커녕 내 일도 제대로 못해서 혼란스러운 나날들을 보냈다. 이따금씩은 내가 이전에 조건 없는 사랑을 더 받았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망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친구의 친한 친구들이, 그 친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까지 질문했을 때 어째서인지 두려웠던 마음에 얼렁뚱땅 부정적으로 답한 것이 너무 후회되었다.
고작 초등학생일 때였지만 그때의 나는 사실 그 친구에게 진심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소심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덜 어수룩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때 시간을 달려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더라면 그 친구에게 소소한 말이라도 더 걸어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 당시 우연히 길에서 스쳐 지나갔을 때마다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다가갔어야만 했다. 이후에 얼마가 후회가 되었는지, 그때 달려가서 헐떡거리는 중에 애써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모습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