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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부 Mar 07. 2022

혹시... 너 뭐 돼?

자의식 과잉도 이 정도면 병이라서



평소에는 운동 경기를 잘 안보는데,

내가 보기만 하면

내가 응원하기만 하면

꼭 그 팀이 지더라.

내가 보면 지나 봐.


예전에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흐름을 잘 타고 있던 경기도 내가 보거나 응원을 하면 괜히 지는 것만 같은 기분. 작년 2020 도쿄올림픽을 볼 때도 그랬다. 여자 배구(김연경!) 경기였는데, 난생처음으로 '베트맨'이라는 스포츠 토토도 해봤다. 나름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2만 원을 베팅했다. 결과는 아쉽게도 우리나라 팀의 패배. 속상한 마음에 "아, 보지 말 걸. 내가 봐서 졌나 봐"라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그건 자의식 과잉이라고 그랬다. "야, 네가 보든 안 보든 상관 없이 이 경기는 졌을 거야"라고.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90년대생들이 저러는 동안 나는 뭐했지?


요즘 잡지에서 인터뷰를 보면 인터뷰이가 다들 90년대생이다. 가끔은 00년대생들도 있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면서, 내가 보고 듣고 배우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보다 동생들이 되어가면서 스스로를 (구체적으로는 내 과거와 현재를) 과소평가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진 것 같다. 쟤네들은 저렇게 멋진데... 저렇게 멋진 일들을 해냈는데, 지금 나는 뭐지? 하는 생각들.


내가 국가 대표팀의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

또는 성공한 90년대생들과 

내가 같다고 생각하는 .

아무래도 그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자의식 과잉은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의 최선을 온전히 인정해주는 것과 깨끗한 응원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세상인데. 대단한 사람이 있다면 덜 대단한 사람도 있는 게 인지상정이고, 대단함의 정도와 그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어떤 가치판단의 근거가 되지는 않아야 하는데.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는 순수하게 기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자신을 주눅들게 만들 뿐인 것은 아닌지.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그런 타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가장 중요하기를 또 무엇보다 커다랗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둘 줄 아는 사람이 멋져보이는 건 역시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리고 이건 얼마 전의 일.


친구 A의 생일이라 약소한 선물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친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선물 인증게시글을 봤다. 받은 선물이 많았던지, 아홉 칸 격자로 나눠 인증사진을 올렸다. 내가 보낸 선물도 인증사진의 1/9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인증해주길 바라고 선물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런 게 선물하는 보람이지." 그렇게 뿌듯함을 느끼며 다음 게시글을 보기 위해 화면을 탭했는데, 다음 인증사진은 단독샷이었다. 그 선물을 보내준 사람은 팔로워가 X만 명 되는 꽤 유명한 셀럽. 사진 위에는 셀럽의 아이디가 태그되어 있고,  "고마워, 덕분에 오늘 하루도 행복하겠다!"라는 멘트도 적혀있었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는데 조금은 섭섭한 마음. 뭐 내 선물이랑 크게 다른 것도 없는데. 가격도 비슷해 보이는구만.


지난 연휴에 또 다른 친구 B와 술을 마시다가, 취기가 조금 올라서 이 얘기를 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쪼잔해보이고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다.) "야, 있잖아. 글쎄 A가 내 선물은 1/9로 모아서 인증하고, 나는 해시태그도 안하고! 내가 쪼잔해보여서 말도 못하고..." 어쩌구 저쩌구. 내 말을 듣던 B는 '너도 참 딱도 하다'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 했다.


야, 너... 뭐 돼?


이 말을 듣고 난 좀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데, 옆에 있던 C가 이게 요즘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유행어라고 알려줬다. (너 뭐 돼?유튜버 레오제이가 해서 유명해진 말이다.) "아니, 그래도 서운할 수는 있잖아."라고 항변하는 나에게 B가 말했다.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거라며. 인스타그램이잖아. 인스타가 원래 자랑하고 그런 곳이잖아. 그리고 진짜 혹시... 너 뭐 돼? 걔는 팔로워 X만 명이라며. 나 같아도 걔 선물만 찍어서 올리겠다."


그렇지. 나 뭐 안 되지. 나도 모르게 또 자의식 과잉이 되어 버렸네. 작은 일에 서운하거나 사사건건 자격지심이 먼저 발동하는 순간에는, 그럴 때마다 "나 뭐 돼?"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럼 좀 웃음이 나기도 하고 꽤 도움이 된다. 타인의 세상에서도 내 존재가 크고 단단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결코 끝까지 채워지지 않을 욕심.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커지기만 할 바람이다. 그보다는 내 세상을 들여다보는 편이 낫다. 거기 말고 여기. 바깥 말고 안. 그들 말고 나. 그러면 나도 좀 뭐가 되긴 하니까. 내가 결국 뭐라도 돼야할 곳은, 사람은 결국 나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쏟는 사람들. 기꺼이 내 30cm 안의 반경으로 들어와주는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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