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세네갈
교환학생 시절 미국에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나의 룸메이트는 세네갈에서 온 카디였다. 본명은 카디자 디알로, 나는 줄여서 카디라고 부른다. 카디는 항상 자신의 고향 세네갈에 대해 얘기할 때면, 눈빛이 반짝이곤 했다. 대서양의 햇살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도시 다카르, 그 중심지에 그녀의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집이 있었다. 다카르의 멋진 해변을, 맛있는 음식을,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의 유쾌한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카이프 화상통화 너머로 당시 유행하던 세네갈 춤을 종종 선보여주시곤 하셨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어쩌다 6년 후 세네갈에서 어머니와 그 춤을 같이 추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카디와의 첫 만남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어느 날 어떤 건장한 아프리카계 남성과 잔뜩 긴장한 표정의 여자애가 기숙사 방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원룸 투베드 방에서 먼저 생활하고 있던 나는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샤워 후 빨가벗고 바로 나올 수 있는 자취생만의 호사(?)를 내심 아쉬워했더랬다. 그래도 나는 예의 바른 코리안이기에, 방문 앞에서 경계태세를 한사코 풀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첫인사에 무색하게 돌아오는 건 몇 번의 끄덕이는 고개인사가 전부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카디와 함께 온 건장한 남자분은 카디의 미국 정착을 도와준 그녀의 친오빠였다. 무역 사업을 하시는 카디의 아버지를 따라 그녀의 친오빠 두 명과 카디는 미국으로 왔고, 먼저 미국에 정착해서 공부를 하고 있던 오빠들과 달리 내 친구는 갑작스럽게 오게 되어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헬로', '땡큐'같은 간단한 단어 외에는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프랑스어와 세네갈어가 전부였던 카디를 대신해 그녀의 친오빠가 대신 소개를 건네주었다. 막상 당사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대리인사라니. 얘랑.. 최소 반년을 이 한 방에서 같이 지내야 한다는 거지?
사람 좋은 건장한 친오빠가 떠난 후, 방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내 친구는 영어를 못했고, 미국 환경이 낯설었으며, 근데 웬 처음 보는 아시안 여자애가 멀뚱하니 자기를 쳐다보고 있으니 본인도 당황했을 터다. 흘러가는 정적을 참을 수 없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카디에게 다가가 대뜸 세탁실 사용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내 빨래가지를 들고 '런드리? 고?' 하니까 끄덕이며 따라왔다. 그걸 시작으로 하루하루 카디에게 기숙사, 학교 생활과 관련된 알아두면 쓸데 있는 잡다한 팁들을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공유해 줬다. 그렇게 카디는 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갔고, (정말 신기하게도) 빠르게 영어실력이 늘었으며, 그렇게 우리는 좋은 룸메이트이자 친구가 되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여느 청년들이 그러하듯 현실에 치여,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도무지 정답을 알 수 없는 미래에 치여, 꾸역꾸역 뭐라도 정답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고, 어느덧 '하여튼간 이게 내 정답인가 보다' 위안하며 하루하루 밥은 벌어먹고 다니는 회사원이 되었다. 그러는 중에도 카디와는 계속 페이스북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았고, 우리의 인사 마무리는 항상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라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으레 주고받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그 후 서서히 이건 정답이 아니었나 의구심이 마구마구 싹트는 마의 직장인 3년 차가 되던 해, 페이스북 메시지로 카디와 안부를 주고받던 중 그녀가 대뜸 세네갈에 놀러 오라는 초대를 건넸다. 초대는 너무 고마운데, 웬 세네갈? 추석연휴를 일주일 앞두고 일에 치여 휴가 계획도 못 세웠던 나지만, 주변에서 휴가를 세네갈로 간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선택지에 있지도 않던 나라였다. 그때 문득 자신의 고향을 얘기할 때마다 살짝은 상기되는 내 친구의 목소리, 반짝이던 눈빛이 떠올랐다. 반짝임은커녕 생기마저 잃은 지 오래인 당시 나의 눈에 비치는 서울은 그저 회사 1, 회사 2, 회사 3… 회사 n이 즐비한 회색빛 콘크리트 빌딩들의 집합체일 뿐이었는데. 세네갈, 거기는 좀 다른가? 궁금해졌다.
나는 몇 시간 정도 고민 끝에 친구에게 가겠다고 답장했다. 일단 이 망할 놈의 컴퓨터 책상으로부터 멀리멀리 떠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 어쩌다 세네갈을 가시냐는 주변 동료들의 의아함 내지 걱정의 눈빛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뚫고 나오는 내 친구의 기뻐하는 리액션으로 나 혼자 살포시 묻어두었다. 세네갈..고? 그래.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