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입국기
자신만만하게 '고'를 외쳤지만, 막상 스카이스캐너를 켜보니 항공권부터 만만치 않았다. 출발지 인천, 도착지 다카르로 설정 후 검색해서 나온 건 항공편을 찾지 못해 죄송하다는 스카이스캐너의 안타까운 메시지뿐이었다. 출발지는 제외하고 도착지 다카르에 직항으로 취항하는 유럽권 도시들을 역으로 찾아보니 파리, 리스본 등으로 추려졌다. 나는 이 참에 유럽여행 때 못 가본 리스본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인천-리스본 항공권과 리스본-다카르 항공권을 각각 결제했다. 다만 추석연휴를 코앞에 두고 결제한 항공권이라 그런지 인천-리스본 항공권은 지각비를 조금 심하게 내야 했는데, 환승지옥까지 더해져 출발하기도 전부터 살짝은 힘 빠지는 기분이었다. 인천에서 베이징, 베이징에서 암스테르담, 암스테르담에서 리스본. 그리고 리스본에서 1박 후 다카르로 가는 험난하디 험난한 여정이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세네갈을.. 마음의 소리가 살짝 새어 나왔다.
그래도 나름 밀린 영화를 원 없이 시청한다던가 환승공황에서 하는 면세점 쇼핑도 재밌을 거라는 긍정회로를 최대치로 돌리며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첫 비행일정인 베이징행 항공편이 30분 정도 딜레이 되었다는 소식에 험난한 여정의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여야 했다. 직장인의 귀하고 소중한 연휴 비행일정에는 오차가 없어야 하거늘. 첫 비행기 연착으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까지 놓치게 될까 봐 더더욱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어찌저찌 베이징에 시간 맞춰 도착해 환승하러 뛰어가니,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무기한 이륙을 못한다며 중국 항공사 직원들과 여행객들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깨달은 몇 가지 인생의 원칙들이 있는데, 그중 만고불변의 제1원칙을 베이징 공항 바닥에서 다시금 되새긴 순간이었다. 인생사 절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기를 세 시간, 기적적으로 수리된 비행기에 올라타 암스테르담으로 향한 나는 리스본행 비행기를 놓치게 되더라도 일단 세네갈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물론 당최 알 수 없는 '중대한 결함'이 있던 중국 항공기에 나의 목숨을 맡겨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직장인의 연휴 일정은 목숨보다 소중했기에, 최악의 상황으로 하루이틀씩 연착되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기절하듯 비행기 의자에 피곤한 몸을 눕혔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리스본행 비행기를 놓쳤지만, 다행히 다음 편 비행기를 바로 연결받아 예정된 도착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리스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스본에서 1박 하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열심히 명소도 찾아다니고, 맛있는 와인도 찾아 마셨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세네갈에 가는 날. 우리나라 여권을 가진 국민이라면 별도의 비자 없이 90일간 세네갈 체류가 가능하다.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에서 몇 번이고 확인을 했지만, 막상 입국하는 당일이 되자 평소 약간의 상상과 망상을 즐겨하는 나는 혹여나 내가 세네갈에 입국하기 바로 몇 시간 전에 우리나라가 무사증입국 불가능 나라가 돼버리면 어쩌나 따위의 잡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짱짱한 여권파워를 믿어보기로 하고, 나보다 더 들떠 보이는 카디에게 이제 비행기에 탑승한다고 메시지를 보낸 후 포르투갈 항공기에 올라탔다.
유럽에 올 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시안이라는 걸 딱히 자각해 본 적이 없는데, 세네갈행 비행기를 탑승하는 순간 나 홀로 동양인 여자애라는 사실이 새삼 유별나보이더랬다. 아이들의 약간은 신기해하는 눈빛을 대수롭지 않은 채하며 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입국심사대로 향하는 순간, 슬금슬금 나의 망상력이 다시 발동되기 시작했다. 외교부 홈페이지가 아니라 외교부에 직접 전화를 해볼걸 그랬나? 아니, 그냥 하루 반차 쓰고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는 게 더 나았으려나?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던 중에 옆에 있던 친절한 아주머니가 옆 줄로 가라고 손짓을 하며 나에게 알려주었다. 자세히 보니 ECOWAS (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 시민들을 위한 심사대가 있었고, 그 외 국가에서 온 입국자들을 받는 심사대가 따로 있었다. 서아프리카 국적이 아닌 사람들은 일반 줄에서 대기를 하면 된다.
드디어 내 순서가 다가왔고, 폭풍 프랑스어 질문이 쏟아졌다. 대학교 때 배웠던 프랑스어의 조각조각들을 꺼내 대충 세네갈에 왜 왔는지, 어디서 머물 건지 등의 질문들을 알아들었고, 친구 카디가 보내준 집주소, 전화번호를 보여주었다.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해 보였던 입국심사대 직원은 친구 '카디자'를 보러 왔다는 말에 세상 스윗하게 웃으며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마치 우리나라 민지를 보러 지구 저 멀리서 왔다는 거랑 비슷하려나. 어쨌든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대한민국 여권에 감사함을 느끼며 5년 만에 만나는 내 친구 카디를 찾아 공항을 나섰다.
간단한 짐 검사를 마치고 나오자 저 멀리서 내 이름을 크게 외치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 부둥켜안으며 반가워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고생해서 세네갈에 갔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 순간으로 답변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거리 비행으로 조금은 피곤했지만, 5년 만에 만나는 내 친구는 알고 보니 부자(?)였나 보다. 집안에 운전해 주시는 기사님이 계셔서 덕분에 집까지 편안하게 에스코트받으며 올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세네갈에 왔어. 늦은 새벽녘의 다카르 고속도로 불빛 속을 달리며 약간은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