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읽은 책 중, '보통의 존재'라는 산문집이 있다. 작가 본인의 일상 다반사를 담담하게 녹여낸 보통의 책인데, 결혼과 이혼에 대해 얘기하던 글귀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 이유는, 물론 작가가 최종적으로 이혼을 선택했기에 결혼 생활의 현실에 대해 더 신명 나게(?) 서술해서였는 지는 몰라도, 나 스스로가 이상하리만치 결혼에 대한 로망 내지는- 아니, 그냥 생각 따위가 없던 사람 이어서일까.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대학교 여름방학 때 도서관 소파에서 반 즈음 누우며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도 기억 저편에 있다가 스멀스멀 떠오르는 것 같다. 여하튼 이런 책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이유는,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결혼을 왜 할까?
나의 가족은 생각해 보면 화목한 편에 속하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가정은 아닐 수 있겠지만, 맞벌이 가정에 외동딸 구조로 (딸의 입장에서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나름 각자의 자리에서 건전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가족 단위로 보면 무탈하게 서로 잘 커온 것 같다. 다 크고 난 지금, 나는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우리 가족의 이해 안 가는 점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대체 왜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닌 것인가'였다. 부모님이 결혼할 때 서로의 버킷리스트 중 '우리가 지은 집'에서 사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갈 때 즈음 용인 수지에 땅을 보러 다니고, 땅을 사고, 땅을 파서, 그 자리에 정말 집을 지었다. 앞마당에는 나무와 꽃을 심고, 바로 옆 땅에는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을 지어 텃밭을 꾸리고 살았다. 텍스트로만 보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겠지만,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생이 된 나는 도무지 벌레 많은 이 집도, 친구들과 바로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물리적 거리도, 등하교 길에 마주치는 개구리와 가끔 출몰하는 뱀(...) 따위의 그 모든 것들이, 그냥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중학교 졸업 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하면서, 부모님은 수지 집을 잠시 세를 내주고 가족이 함께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는 내가 대학교만 들어가면 바로 다시 수지로 돌아간다는 생각이셨던 부모님도, 어쩌다 보니 계속해서 서울에서 지내게 되고, 지내다 보니 그냥 눌러앉게 된 것이 10년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무럭무럭 자란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끝끝내 독립을 하겠다며 오피스텔 전세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린다. 그리고 부모님은 당신들이 지은 보금자리로, 20여 년 전의 버킷리스트로, 다시 돌아가기를 결정한다.
오랜만에 보는 수지는 내가 알던 곳과는 사뭇 달라지긴 했다. 아스팔트 길이 생겼고, 강남역을 오가는 빨간 버스가 정차하는 버스 정류장이 생겼으며, 무려 집 근처에 카페와 편의점이 생겼다. 생긴 것만큼 없어진 것들도 있는데- 여름철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조잘조잘 들리던 개구리울음소리도, 겨울날 무릎만큼 쌓이는 함박눈으로 할아버지가 만들어주던 자이언트 눈사람도, 우리 마을 옆으로 졸졸 가로지르는 시냇물가의 소금쟁이들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의 나는 외딴섬처럼 있는 우리 집이 싫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텅 빈 집에 혼자 있던 나의 모습이 싫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이제는 부모님의 결정을 조금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다 큰 성인이 된 딸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사라져 버린 개구리와, 자이언트 눈사람과, 소금쟁이들이 못내 아쉬운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친구와 제주도 캠핑을 놀러 간 나는 대뜸 프러포즈를 받게 된다. 결혼이라는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본 적도 없는 우리인데, 반 즈음 무릎 꿇고 결혼하자고 떨리는 목소리로 청혼하는 남자친구를 눈앞에 둔 나는 일단 yes! 앞서 얘기했던 원초적인 질문, 결혼을 왜 할까? 에 대한 대답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그냥 이 사람이 좋으니까 하는 거다. 근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결혼을 하긴 하는데, 언제, 어떻게 할까? 제주도에서 돌아와서 남자친구와 차근차근 얘기해 보니, 본인도 이에 대한 대답을 딱히 생각을 하진 않았다고 한다. 그냥 나랑 결혼하는 게 중요하지, 그 외에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오빠는 참 나랑 잘 맞아.
그렇게 시작되었다. 프러포즈 이후 약 1년 동안의, 집 앞마당 결혼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