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에세이 - 5

복세편살

by 안녕

세네갈에는 프랑스어로 분홍색 호수라는 뜻의 'Lac Rose'라고 불리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정식 명칭은 'Lake Retba' (레트바 호수)로, 다카르 북동쪽 3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길이 4.2km, 면적 3 km²의 큰 호수가 장미 빛깔의 분홍빛을 띠고 있다는 게, 사진을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세네갈의 대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니, 또 안 가볼 수가 없지. 기사님 차를 타고 카디와 함께 아침 일찍 즐거운 호수 나들이 길을 떠나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핑크 호수 그 자체도 멋있었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아프리카 흥이 한 껏 오르는 노래를 들으며 열심히 달리는 중에 기사님이 갈림길마다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는데, 조금 가다가 또 어떤 말 타고 가는 사람과 얘기하더니 웃으면서 차를 다시 돌리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우리가 가는 호수는 가는 길에 인터넷이 끊기기도 해서 애초에 구글맵 같은 네비로만 가는 게 쉽지 않은 곳이었다.


어릴 때 아빠 차를 타고 멀리 어딘가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엄마는 옆에서 지도 책을 펴곤 했는데, 지금의 나는 네비 없는 운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네비 없는 운전은 없다면서도 길이 조금이라도 막히는 느낌이 들면 이 놈의 네비가 교통 상황을 제때 업데이트하지 않고 나를 굳이 막히는 길로 안내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 모든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뭐가 그리 불만인지. 그에 반해 조금 귀찮아도, 조금 돌아가도 길을 알려준 행인들에게 고마워하며 길을 찾아가는 기사님의 운전은 여정 자체를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해 준다. 그래, 이 길이 틀릴 수 있지, 어쩌면 돌아갈 수 있어. 어쨌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것만으로도 대단해! 어쩌면 호수까지 가는 여정은 내게 제일 필요한 덕목 '복세편살'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복잡한 세상, 심호흡 한 번 하고, 편하게 살자.


호수에 도착하니 눈이 부실만큼의 하얀색 소금 산이 먼저 보였다. 내리쬐는 듯한 태양과 호수에서 서식하는 알개의 영향으로 물속의 염분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 고도의 염분 속에 있는 얄개들이 호수를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호수 바닥에서 열심히 소금을 퍼 나르는 일꾼들 옆으로 나무 보트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찾아오는 길이 쉽지 않아서 그런지 아름다운 장소에 비해 관광객들이 많지는 않았다. 카디와 나, 기사님 그리고 노를 저어주는 두 명의 가이드가 한 배에 올라탔다. 햇빛이 뜨거워도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유유자적 보트를 타고 장미빛깔의 호수를 가로지르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돛대에 걸어놓은 세네갈 국기가 시원하게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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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여행을 글과 사진으로 아카이빙 하던 중, 22년 여름 세네갈의 이상 폭우로 인해 레트바 호수에 엄청난 홍수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평균 수심의 세배에 달하는 물이 넘쳐흘러 인근 마을은 물론 7천 톤의 건져 올린 소금들이 물에 잠겼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불어난 물로 소금 생산이 어려워진 것은 물론 더 이상 장밋빛을 띄지 않는 호수 색 때문에 관광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약 3천 가구의 주민들이 망연자실하고 있다는 기사에, 괜스레 나도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지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들어버린 탓일까- 환경 이슈에 조금은 무뎌지기도 했던 나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하다. 지구의 수많은 레트바 호수가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다시금 아파하는 지구에 무뎌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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