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에세이 - 4

신묘한 힘

by 안녕

카디 아버님을 뵈러 가는 길. 아침에 인사드릴 틈도 없이 워낙 일찍이 출근을 하신다. 미국과 중국을 무대로 무역 사업을 하는 아버님의 회사는 다카르 시내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카디는 학생 때 일과 출장으로 바쁘신 아버님보다 어머님과 화상통화를 더 자주 하곤 했는데, 한 번은 나에게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으시다는 아버님의 감사한 마음 덕에 카디와 나, 아버님 셋이서 화상통화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잠깐이었지만 당시 아버님은 유창한 영어로 카디가 처음 왔을 때부터 잘 챙겨줘 고맙다며, 학창 시절 함께 좋은 추억 많이 만들으라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화면 속 아버님의 인자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회사에 도착하니 아버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첫인사부터 나를 '한국에서 온 딸'이라고 불러주시는 아버님 덕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회사까지 온 김에 아버님이 직접 회사 투어를 해주시겠다며 5층 정도 되는 회사 건물 구석구석 구경을 시켜주셨는데, 내부 인테리어나 구조 자체가 주는 힘이 대단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한국의 '회사'라고 함은, 쉴 틈 없이 뭔가 일을 하고 있는 복합기의 백색 소음, LED등임에도 이상하리만큼 침침한 조명, 어떤 작당모의를 해도 알 수 없을 불투명한 유리 미팅룸 따위가 생각나는데 말이지. 아버님의 회사에는 벽화와 그림이 많아 눈이 피로하지가 않고, 천편일률적인 하얀 벽면이 아닌 우드 톤, 하늘색 등의 색감이 적절하게 사용돼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채광을 무작정 막는 블라인드가 아닌 하얀 커튼이 있어 자연스럽게 적절한 햇빛이 들어와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한창 아버님의 투어에 빠져들던 중, 한 그림 앞에 멈춰 섰다. 앞서 걸려있던 아프리카 정통 인물화, 동물, 자연경관 등의 벽화와는 다른 느낌-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다른 '힘'을 가진 그림이었다. 그림의 제목은 'The Door of No Return'. 돌아오지 못하는 문이라니, 뭔가 으스스한 기분과 함께 궁금증이 생긴다. 알고 보니 이 그림은 다카르의 'Gorée'라는 섬에서 노예로 팔려나간 아프리카인들이 이 문을 통해 배를 타고 나가게 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하여 붙여진 실제 장소를 그린, 어떻게 보면 역사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홀린 듯 한동안 그림 앞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버님은 가타부타 더 설명하지 않으시고, 며칠 후 카디와 함께 이곳에 직접 가보라며 웃어 보이셨다.

20180924_122223.jpg The Door of No Return


시간 가는 줄 모르던 투어가 끝난 후 카디와 나는 오후의 다카르 해변을 즐기기 위해 다시 'La Payotte'를 찾았다. 대서양을 마주하는 해양 도시답게 해변가에서는 싱싱한 생선과 새우를 즉석으로 구워주는 노점상들이 즐비했는데, 집에서 저녁을 먹기 전 간단한 애피타이저(?)로 생선구이와 맥주를 먹어본다. 지나가며 땅콩을 파는 상인이 있어 심심풀이 땅콩도 함께 곁들여보니 행복이 정말 뭐 별 건가, 이런 게 행복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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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와 함께 먹고 마시다가 해변 산책도 하며 편안한 오후를 보내던 한 때, 노을이 지기 시작하더니 해변가의 하늘이 분홍색으로, 보라색으로, 점차 하나의 어떤 색으로 형언할 수 없는 혼연의 색을 띠며 대서양의 망망대해로 해를 끌어들여간다. 마치 낮에 감상한 그림 'The Door of No Return'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묘한 기분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 같은 그림이 아니며, 다 같은 하늘이 아니 듯.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온다라는 표현이 더 가깝지 않을까. 정말이지, 신묘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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