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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운서 Apr 12. 2022

“가을 야구도 해본 놈들이나 하는 거지”

'말의 품격'에 대하여

때는 벌써 2년 전 가을.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준플레이오프 경기 때였다. 같은 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한 지붕 두 가족이 가을 야구에서 7년 만에 맞붙은 경기였다. LG 트윈스 팬으로서 1차전 직관을 갔다가 한 점도 내지 못 하고 맥없이 패하는 경기를 보고 왔고 2차전은 마음을 비우고 집에서 TV로 보고 있었다.     


마음을 비웠다고 하지만 경기의 양상은 너무 처참하게 흘러갔다. 4회에 이미 두산 베어스는 8점을 냈고 경기의 흐름은 완전히 넘어간 듯 보였다.      


그런데 그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두산 팬인 지인이 역시 집관을 하면서 본인의 SNS에 계속해서 TV 중계화면을 올렸다. 그런데 하나하나 올릴 때마다 이런 글들이 적혀 있었다.     


“왜 자꾸 기분 나쁘게 라이벌이라고 그래.”

“가을 야구도 해본 놈들이나 하는 거지.”

“이렇게 실력 차이가 나는데 라이벌이래. 어이가 없어.”     


안 그래도 좋지 않던 기분이 확 나빠졌다. 그 지인의 SNS는 팔로우 수도 팔로워 수도 적었다. 그리고 사실 나와의 관계도 꽤나 가까웠다. 그렇다면 LG팬인 내가 분명 볼 거라 인지했을 텐데 꼭 글을 그렇게 썼어야 했을까.      


아니,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는 건 LG 트윈스 팬인 나의 열등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나는 ‘말의 품격’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잘하고 있다면 굳이 상대를 깎아내릴 필요가 있을까. 나의 팀을 칭찬만 해도 되지 않을까.


살다 보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남을 낮추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상대를 깎아 내림으로써 그 사람들이 낮추고 있는 건 자신의 가치이지 않을까.     


LG 트윈스는 8점 차 상황에서 거짓말처럼 7점을 따라붙었지만 결국 9대 7로 두산 베어스에게 졌다. 그리고 그렇게 LG를 이긴 두산 베어스는 플레이오프에서 KT 위즈를 이기고 한국시리즈까지 가서는 NC 다이노스에게 패배해 최종적으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나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NC 다이노스의 창단 첫 우승을 마음 다해 축하합니다. 그리고 준우승을 했지만 시즌 내내 그 별명처럼 ‘미라클’을 보여줬던 두산 베어스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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