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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nokjoo May 17. 2022

인영이

친구보다 더 진한 이름

너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좋겠다고

얼마나 생각을 했을까


너는

너무나도 커서

글로 쓰기 부족하다고

다음으로 미루던 것이 이십 년이 흘렀네

이십 년이 흐르는 동안

너는

더 커져서 어떤 이야기로

너를 표현할지 모르게 되었어.

 

그렇게 시간이 흐른 채로

삼십 년이 될까 무서워서

오늘,

너의 이야기를 큰 마음먹고 적으려고 해.


인영아.


너를 가만히 부르면

따뜻하고 마음이 벅차올라

눈물이 맺혀.


너희 집 강아지, 주명이 말이야.

겁 많고 두려워하는 것 많아서

만날 때마다 어머니 침대 아래로

숨던 주명이,

그게 나였잖아.

사람 무서워하고 큰 소리 무서워서

바르르 떨면서 큰 침대 아래

어두운 구석으로

자꾸만 숨던 주명이,

난 그 애가 너무 나였어서

너희 집에 들를 때마다

침대 아래를 들여다보곤 했어.

내가 불러도 나오지 않던 주명이는

인영이 네가

아주 부드럽게

주명아. 괜찮아. 나와도 돼.

세 마디를 했어.

주명이는 나올 때도 더러 있었지만

나오지 않을 때가 더 많았어.

그럼 네가 다시 더 따뜻하게 말했지.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돼.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작고 약한 주명이가 우리 곁에 있어줬어.


내가 인영이 너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내 나이 열아홉이었어.

어찌 됐는지 나는 모든 게 두렵고 무섭기만 했어.

가족이 나를 사랑으로 키워줬지만

나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만 같아서

항상 모든 게 무섭고 어려웠어.

너를 처음 만났던 그날은

무서움이 최고 극에 닿은 날,

대학교 오티 날 아침 운동장이었어.

 

나는 대부분의 지난날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처럼

생생해.

나에게 다가오던 너.

하얀 운동복 위아래로 입은 너.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너.

그런 네가 나에게

여기가 영문과 줄이예요?

네..

나랑 친구 할래요?


인영아.

넌 그 해 2월 오티 운동장 이후로

단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은 사람이었어.

너와 친구가 된 후로

나를 떠난 사람은 아빠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너무 사랑하는 그와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에도 너는 그냥 언제나처럼 내 옆에 있어줬지.


삼십 년이 된 낡은 우리 집에

나는 춥고 어두운 집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집에

서슴없이 찾아와

같이 라면을 끓여먹고

손을 잡은 채 잠도 들었지.

그리고 넌 내게

너희 집은 아늑하고 좋아.

라고 말해주었어.


주명이처럼 바르르하던 나를

어두운 침대 밑에서 다정히 끌어내 오듯

나를 불러

너의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앉혔어.

나는 불편하고 어색해서 거절했지만

네가 부드럽게 말했지.

 친구들이 너무 좋은 애들인데

나도 너무 좋아서 그들과 내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어색하다면 오늘 아니고 다음에.


그러면 기다렸다가 너는 다음에

또 나를 불러내었어.

그래서 그 후로 너의 그 좋은 친구들은

지금 내게도 너무 좋은 친구들이 되어서

함께 나누고 나이 들어간다.


너 기억나?

내가 결혼하고

친정엄마와 함께 살 때,

네가 우리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우리 엄마방에 들어갔잖아.

넌 그 방에서 나오지 않고

우리 엄마랑 도란도란 이야기해줬어.

엄마의 일상을 묻고 너의 이야기를 하고

우리 엄마와 웃고 공감해주었지.


그날,

그날 이후로

나도 다른 친구들 어머니 아버지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고

이야기하고 안아드리게 되었어.

너를 통해 배운 것을 해보았어.

그랬더니 세상이 넓어졌어.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내가 된 것은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어.


인영아.

너의 친언니 땡을 내게 소개하고

너와 땡 언니 그리고 내가

같이 여행도 갔었잖아.

주명이 같이 살던 내가

친구 언니를 내 언니로 받아들이고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 것도

나에겐 정말 대단하고도 남는 사건이야.


네가 알게 모르게

내게 했던 모든 것은

나를 세상 밖으로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섞이게 하는 열쇠였어.

너를 만나

내가 변하고

나아졌고

웃었고

거절하고 (거절하는 것도 네게 배웠지)

크게 노래했어.


이번 주말에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 손엔 네가 사준 나의 친정엄마 옷이 있었어.

만삭인 네가

나와 시장을 걸으며

사준

밝은 복숭아빛 티셔츠.


네게,

나는 준 것이 없지만

넌,

내게 세상을 주었어.

앞으로

나는 너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넌,

친구보다 더 친구.

친구라는 말보다 더 진한 단어가 있다면

그건 너야.

그래서 넌 인영이야.

친구보다 더 진한 단어 인영.


오늘 저녁도

너의 사랑스러운 남편과 둥이들과

네 뱃속의 윤나와

행복한 시간 보내.


또 만나자,  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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