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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N SIHYO Jul 18. 2016

그저 좋은 계절을 기다리며

환상의 빛을 보고

올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많이 찾아봤습니다.

지난 주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개봉한 '환상의 빛'을 보러 시네큐브에 다녀왔어요.

1995년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작품!

환상의 빛이라는 타이틀과 포스터로 볼 수 있는 우울한 분위기의 주인공 그리고 햇살이 만들어낸 환상의 빛, 거기에 "그 기억이... 날 견딜 수 없게 해"라는 문구가 저를 확 사로잡았어요.


++ 이번에는 제대로 스포일러가 되었습니다 ++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장편영화에요.

이후 선보인 영화들은 가족을 주 소재로 해 마음을 울리고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죠.

최근에 본 바다 마을 다이어리도 그랬고 이번에 개봉할 태풍이 지나가고도 그럴거에요.


환상의 빛은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은 일본의 미야모토 테루라는 소설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고위관리의 자살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영화의 테마를 죽음과 상실로 잡았다고 해요.


환상의 빛, 생각보다 너무 우울했고 슬펐고 영화 장면 장면마다 왜 이렇게 찍었을까? 다큐멘터리 감독이라 내레이션 부분으로 보고 관객이 내레이션 할 수 있게, 생각할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한 것일까? 하며 계속 생각하면서 봤어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고향으로 간다고 갑작스럽게 사라진 치매에 걸린 할머니

갑작스럽게 자살을 한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온 남편 이쿠오의 그림자를 갖고 사는 유미코의 이야기예요.

3개월 된 갓난아기와 함께 남겨지고 계절이 몇 번 바뀌고

4년에서 5년이 지나 재혼을 했는데

갑자기 이쿠오가 생각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담았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는 항상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있었는데, 어느 인터뷰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라고 말했다고 해요.

죽음보다 잃어버린 아픔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도 수많은 잃어버림, 상실을 경험했고 하잖아요.

상실의 시간은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다가 갑자기 기억나고 슬퍼지고 그리워지는데

저는 환상의 빛을 보면서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정신적 지주셨던 두 분인데 짧은 기간에 걸쳐 돌아가셨거든요.  


심하게 담담하던 영화가 마지막에 다가가면서 유미코가 참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켜버립니다.

롱샷, 롱테이크로 유미코에게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서 

그동안 숨키고 혼자 아파했던 유미코의 감정이 터지는 그 순간에 저도 영화를 보면서 참았던 감정이 팍하고 터지더라고요. 

유미코를 지켜 보던 타미오가 말합니다.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상실,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한방에 들려준 대사였던 것 같아요.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방식으로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영화 내내 죽음을 그리면서 왜 그걸 죽음으로 표현하지 않았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러면서 밝은 꿈, 어두운 현실을 확실히 나누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 저한테 생각해보라고 한 것 같았죠.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유미코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상처 치유가 안되었나봐요. 

그런데 마지막엔 밝은 옷을 입죠.

“날씨가 많이 풀렸죠”라고 유미코가 말해요.

“좋은 계절이 왔어”라고 시아버지가 답합니다.

유미코의 숨겼던 감정들이 치유되었을까요?


낯설지만 유미코가 경험한 것들은 나도 경험했던 것이고 친구들도 엄마 아빠도 경험한 것들이라 저는 조금 더 밝게 더 진하게 살아가고 싶어졌어요.

누군가의 빈자리는 새로 채워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지고 삶은 소소하게 행복으로 채워지고

마음 속 깊은 곳의 아픔은 쉽게 채워지지 못해 더 아파지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그 말, 이 말이 유미코를 그리고 저를 그동안 갖고 있던 너무 어둡고 나오기 무섭고 두려웠던 공간에서 나올 수 있게 만들어 준 작은 빛이 되어 줬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과제를 하나 줬는데 '덜 아프고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좋은 계절을 맞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언제 날 잡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모아 첫 작품부터 새로운 작품까지 한번에 보고 싶어요.



18.07.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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