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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N SIHYO Sep 13. 2016

명상

잠깐 길을 걷습니다.

그냥 걷기만 합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고 그냥 걷는 것에 집중합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이제 곧 익숙해집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걷는 것이 즐겁게 만듭니다.


이렇게 걷기 시작한 지 좀 되었습니다.

집중하는 것도 생기고

매 순간 조금씩 변하는 것도 있죠.


호흡이 달라집니다.

불규칙하던 호흡이 이젠 리듬감 있게, 안정적으로 됩니다.

항상 마음이 분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게 머무르기 힘들지만 잠깐 일과 생각을 멈추게 하고 숨만 쉬어 봅니다.

조금씩 편해집니다.


천천히 걷는 사자를 생각합니다.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편안하게 걷습니다.

얼마큼 갈지 몇 분 걸을지보다 지금 이 편한 걸음에 더 집중하고 즐깁니다.

조금씩 안정된 걸음이 되면 불안, 초조, 슬픔은 저 멀리 사라지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서서히 차오를 것입니다.

제겐 기쁨, 자신감 이런 것들입니다.


느릿느릿 걷는 사자를 생각하며 걸으면 더 강해지고 더 가벼워지고 더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모든 존재가 친구다

내가 걷는 모든 길이 명상을 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길에 있는 환경이 나의 친구가 되어줍니다.

조금만 더 긴장을 풀어봅니다.


무언가 결정해야 한다면 걸으세요.

요즘 제가 많이 하는 것입니다.

앉아서 결정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앉아서 글을 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잠깐이라도 걸으면서 하나하나 짚어봅니다.

지금 있는 곳이 시끄러운 도심이라도 편안한 속도로 호흡과 걸음을 조절하면 나만의 조용한 섬이 만들어지고 생각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감정을 안아줍니다.

힘든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집으로 가지 않고 김포공항으로 가서 지금 당장 제주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샀습니다.

그리고 제주.

무작정 걸었습니다.

공항에서 제주 해안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어느새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러다가 웃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엔 가벼워지더라고요.


바람과 바다 그리고 지금 걷는 이 길에 집중하다 보니 제가 그동안 감춘 것들이 팡하고 터진 거예요.

제주를 한 바퀴 걷고 나니 편해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마음 챙김을 하는 명상이 주는 편안함을 경험해보세요.

한 번 해보니 이젠 알겠습니다.


12.09.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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