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또 도졌다.
조금 나아질 만하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불치병은 어김없이 튀어나와 발작한다.
이 병은 정작 환자 본인은 괜찮다.
다만 옆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할 뿐이다.
고칠 약도 없다.
아니, 있긴 하다.
어머니는 일찍이 이 병을 지닌 아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명의도 울고 갈 특효 처방을 내렸다.
다행히 약효는 직방이었고, 병이 도질 때마다 행해진 엄마의 치료 시술은 그 놈을 병에서 구해냈다.
사실 태어나기 전부터 병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위해 태아는 보통 머리를 아래로 향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위를 향했다. 전문 치료진들이 머리를 아래로 돌리려고 극악의 마사지 처방을 행했지만, 태아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기어코 엄마의 배를 째고서 세상에 나왔다.
불치병과 함께...
그래... 이 병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하라면 안 하고, 하지 말라면 하는 반골기질은 이 병의 주요 증상이다.
병은 뼛속 깊숙이 반골 기질로 내재되어 뼈가 자라고 키가 자라는 학창 시절부터 병의 존재를 톡톡히 확인시켜 주었다.
수업 분위기 흩트리기, 만만한 선생님 놀리기 같은 오피셜 한 수업 시간에 물론, 프라이빗한 일상에서도 고무줄 끊고 도망가기, 공기놀이 파토 치기 등 각종 악역을 스스로 맡아서 자처했다.
그래도 수업 시간 앞에 나와서 무반주 댄스를 하는가 하면, 각종 학예제 행사 때 선두에 나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수련회, 수학여행 등 각종 행사에는 학급 오락 부장 역할도 빠짐없이 해왔다. 이런 양립적인 활동으로 인해 얄밉지만 싫지 않은 놈, 재밌는 놈이라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하며 교우 관계를 유지해 왔다.
공부 따윈 개나 줘버려~ 모든 학생에게 주어진 교과 과정은 전혀 관심밖이었지만 중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을 좋아해서 수학만 100점을 맞았다. 처참한 다른 과목 점수들 중에 단 한 과목 100점이라는 숫자는 더욱 빛나고 반짝거렸고, 그것만으로도 수학 선생님께 확실히 자신의 존재를 어필할 수 있었다. 또 그걸 일부러 노렸고 즐겼다. (어쩌면 이놈은 뼛속부터 전략가이었을지도...)
질풍노도 고딩시절,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안 해 본 것을 한 번 해 보고 싶어졌다. 전교 1등은 못 할 것 같았고 전교 꼴등은 한번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 일부러 답을 피해 답안지를 작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전교에서 뒤에 두 명이 더 있었다.
백지를 낸 두 놈이 전교 꼴등과 꼴등 앞을 차지하는 바람에 인생에서 전교 꼴등이라는 타이틀은 결국 가지지 못했다.
이처럼 이 놈의 학창 시절 시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병은 날로 날로 더 고약해져 가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병은 어김없이 발현되었다.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을 1년도 안돼서 때려치우는가 하면, 돌연 일본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일본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리고 주위 친구 놈들의 '너 꼭 닮은 놈 낳아라' 저주가 실현되는 바람에 이 놈과 꼭 닮은 아들 두 놈을 낳고 거울 치료를 당하며 병이 잠시 잠잠해지는가 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몇 년간 조금 조용하다 싶던 불치병이 또 지랄하기 시작했다.
"여보. 나 창업하고 싶어."
연애 기간 포함 도합 10여년 불치병 환자와 함께 한 내공답게 아내는 저 놈의 지랄병을 더 강한 초강수로 맞받아쳐버렸다.
"여보, 나 셋째 가졌어."
두둥.
"아놔..."
올해 4월, 브런치에 글을 하나 올렸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안 봤으면 하는 글이었다.
https://brunch.co.kr/@ahopapa/30
이 글을 쓴 지 벌써 8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으니, 또 허황된 소리만 늘어놓던 놈이 조용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기억 속에서 잊혀져 아무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마 후자일 것이다.)
당시 글에서 가장 큰 것을 걸었다.
"내가 안 하는가 봐라. 내 성을 간다."
성을 바꾼다는 건 자기부정의 최고 단계 아닌가. 그걸 내기 조건으로 내걸었다.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 글을 쓴 본인은 절대 가볍게 쓴 게 아니었다.
예정에 없던 셋째 소식에 성을 갈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올해 11월.
가족들에게 은퇴 선언을 했다.
그리고 당당히 '창업가'라는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붙였다.
물론 앞에는 '예비'라는 수식어도 함께.
창업가는 어쩌면 모두 모험병에 걸린 사람일지도 모른다.
통계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90%가 3년 내에 문을 닫는다.
하지만 모험병 환자들은 이런 통계를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10%가 될 수 있어.'
병이 틀림없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시작하지 않을 일을, 기꺼이 시작하는 사람들.
실패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 병에 한 번 걸리면 평생 간다.
그렇게 끊임없이 모험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살아야 정상이라고 믿는다.
모험하지 않는 삶은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 인정한다.
나 역시도 지독한 모험병 환자다.
이 브런치북은 '모험병'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모험 속으로 뛰어드는 과정을 담아낸다. 또한 창씨개명을 하지 않기 위해, 한번 뱉은 말을 끝까지 지키고자 남긴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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