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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un 23. 2020

공항 가는 길


2020년 6월 22일

날씨: 덥고 무거운 공기

기록자: 동그라미


K가 떠났다.

이른 아침 이미 욱신대는 두 눈을 뜨자마자 홀린 듯 서둘러 그의 집에 갔다. 그가 지퍼를 올린 트렁크를 신발장에 가져다 놓은 다음 거실에서 중요한 소지품들을 백팩에 가지런히 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비행기 타러 가는데 그는 위아래로 엊그제 산 새 옷을 입었다. 같은 날 새로 한 머리까지, 어디 좋은 데 가는 사람처럼. 여유 있게 짐을 다 싼 그는 아버지에게 짧은 카드도 쓰고 커다란 방들을 둘러보았다.


모든 짐을 아버지 차에 싣고, K와 그의 아버지와 나는 아침을 먹으러 갔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24시 콩나물 국밥집에서 아저씨는 괜히 티비로 흘러나오는 북한 삐라 뉴스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얹어 이야기를 꺼냈다. 이내 아저씨는 절반도 드시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러 나가셨다. 나도 그냥 공항 따라갈까? 아니야. K가 아버지께 공항 가는 방향에 나를 집에 태워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운전하시면서 한 손에 가래 두 알을 달그락달그락 돌리고 있었다. K는 가는 동안 나랑 손을 잡고 싶어서 일부러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우리 아파트 입구에 내렸다. 따라 내린 K와 나는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잘 다녀오라고 했는지 잘 있겠다고 했는지 내가 뭐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품 안에서 울음이 날까 봐 숨을 참았다. 영원히 거기 서있고 싶었다. 이내 서로를 놓아주었다. K는 다시 앞좌석에 탔다. 창이 내려갔고 그 너머로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차는 신호를 받았고, 바로 떠났다.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아파트 입구에 내가 혼자 서있었다.

방금 있던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단순한 사실에 나는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나는 눈앞에 경계를 넘어서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를 간절히 기도했지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활기로 가득 찬 세상과 도시들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내가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나와 닮은 사람들을 어디선가 만나고 닮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를


우리의 이런 바람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

우리의 방은 너무 작고 시끄럽고 우리에게 돈은 항상 멀리 있지 …

넓은 곳으로 나아가려 해 …


♪ 이랑 - 우리의 방



헤어지는 날을 앞두고 나는 며칠간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 수시로 울면서 지냈다.

삼 개월 남짓 못 보는 게 이렇게 슬플 일인가, 스스로 의아해하면서도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떨구었다. 이번의 헤어짐에서 어쩐지 나는 자꾸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 자꾸 겹쳐 보였다. 예전에는 이렇게심각해지지 않았다. 코로나 19가 팬데믹으로 확산되는 동안, 내게 독일이라는 땅은 나와 K가 함께 2년 간 모험했던 (사실 아주 지루하리 지난한) 유학 생활지가 아니라 어느새 가서는 안될 곳,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를 곳으로 변해있었다. 삼 개월이 얼마나 더 길어질 지 알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힘들었다. 만약 K가 감염이라도 된다면? 만약 대학이나 지역사회에 접근금지 또는 락다운이 내려진다면? 만약 독일 국경이 막힌다면?

곧 먼 여정을 떠나는 우주 비행사의 아내가 느낄 법한 종류의 감정이 자꾸 찾아왔다. 종일 함께 있다가 늦은 밤 귀가해 내 방에서 자려고 눕기만 하면, 온갖 공포가 유성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랑을 속삭이고 진실한 약속을 말하는 나와 연인과의 일상이 마치 재앙이 닥치기 전 유독 평온한 장면을 보여주는 재난 영화의 클리셰 같았다. 논문을 쓰기 위해 필요한 실험만 얼른 마치고 오겠다는 K의 말은 그래서 자꾸만 무력하게 느껴졌다. 전 세계를 조각조각 갈라놓는 코로나 19가 서로를 자극하는 나의 불안과 상상에 계속해서 땔감을 대주었다. 대낮에도 활활 타오르는 악몽은 K와 내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까지 날 괴롭히다가, 혼자가 되고 나서야 허무 속에 놓아주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재택근무를 했다. 올해 들어 제일 더운 듯한 무더위 속에 텅 빈 마음으로 겨우겨우 업무를 보았다. 좁고 빽빽한 내 방. 사막같았다. 어제 K에게 쓴 편지에 나는 잘 있겠노라 다짐했던 그 모든 긍정적인 에너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읽고 있는 pdf 서류들 위로 코로나로 인해 이뤄지지 못한 K와 내가 독일에 함께 있는 모습들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나도 원래는 같이 갔어야 되는 거잖아. 이럴 게 아니었던 거잖아. 울다 지친 두 눈은 이제 욱신 거리는 것을 넘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이 모든 한계가 너무 아파 글을 쓰고 있다.

11시간의 비행을 마친 K에게서 전화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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