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뽈입니다 Jun 18. 2020

서촌방향

2020년 6월 18일

날씨 : 밖에 안 나가서 모르겠네

기록자 : 뽈   


수아는 귀여운 글을 주문했고 나도 귀여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럴 수가 없다.     




오늘 눈을 뜨자마자 한 생각은, 죽고 싶다.


야.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냐. 알지. 생각하는 것에 비해 입 밖으로 꺼내는 경우는 드문데 나도 모르게 가끔 내뱉어질 때 마침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큰 타박을 받는다. 당연하지. 타박받아 마땅한 말이다. 나는 사람들을 오해하고 사람들은 나를 오해해서, 그들에게는 그 말이 순간의 어리광이나 푸념으로 들리는 모양이다. 나는 정말 아주 오랫동안 정말로 죽고 싶어 했는데. 지금도 그런데. 밥그릇을 싹싹 비우며 잘 먹고 코를 골며 잘 자고 깔깔 웃고 바람 빠진 풍선 인형마냥 두 손을 나풀대며 노래를 크게 부른다고 해서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은 마치 달처럼. 달처럼 낮에도 밤에도 항상 있는데 다만 때에 따라 이울었다가 꽉 찼다가 잘 보이다가 희미해졌다가 그런다.



어제 나는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청소를 하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다 널고 쓰레기를 버리고 나가서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에 내렸다. 경복궁역 1번 출구에 서서 계단을 올라오는 M을 지켜봤다. M은 M답게 입었고 나는 나답게 입었고 우리는 그렇게 너무도 달라서 서로의 차림새를 보고선 새삼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배가 고프다는 M을 데리고 빵을 구워 파는 카페에 갔다. M은 이름도 모양새도 휘황한 오렌지 바닐라 케이크를 골라서 다 먹었고 나는 버터 스콘을 골라서 한 입만 먹었다. M은 참으로 한결같아서, 케이크를 먹는 동안 내가 펼쳐 든 여러 개의 메뉴 선택지 중 늘 고르던 메뉴를 골랐다. 기왕 이렇게 멀리 왔으면 안 먹어본 걸 먹어봐, 좀. 핀잔을 주면서도 나는 곱창볶음집을 찾아냈다. 여기서 먼 데 있어? 발이 아파. 나 만날 때는 편한 신발 신고 와, 제발. 많이 걸어야 하니까. 서울의 핵심 관광지 근처라 평소 같으면 벌써 복작댔을 먹자골목이 심히 한산했다. 평일 오후 네 시라도 그렇지. 내가 찾은 가게는 허영만 화백이 다녀가 유명해졌다는 집이었으나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철판에 달달 볶아져 나온 매콤한 곱창볶음과 맥주 두 병을 비우며 우리는 이야기를 좀 했는데 주로 M이 묻고 나는 짧은 대답을 했다. 북한까지 야단인 뉴스가 나오는 TV에 눈을 고정한 채로. 영국에선 연락 왔니? 아니. 근데 우리 부서의 머리가 오늘 잘렸어. 줘야 할 월급이 많은 사람부터 자르는 걸까? 글쎄.  



까무룩 졸던 주인아주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채널을 돌리던 때였나. M이 김치전인가 호박전인가 아무튼 전 이야기를 꺼내서 우리는 갑자기 부침개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서촌을 통과하고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안국역으로 향하는 동안 M은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나는 조용히 걸었다. 인사동 문화의 거리를 걷는 내도록 이곳저곳의 물건을 구경하느라 한 눈 팔린 M의 팔을 잡아끌며 낙원상가를 지나 종로3가역에 다다랐다. 몇 년 전인가, 비 오던 날 회사를 째고 낮술을 한 번 마신 적이 있는 전집엘 갔다. 모듬전과 처음 보는 이름의 막걸리를 시켰다. 맛이 기억 필터를 거치며 미화된 건지 기대와 달리 부침개가 눅눅하고 싱거워서 영 별로였다. 양파 장아찌를 뒤적거리며 어쩌다 시작된 M의 과거 연애담을 들었다. 직접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선물로 줬던 외자 이름을 가진 윤 씨 남자와 관련한 일화가 흥미로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야, 라고, 그 외자 이름을 가진 윤 씨 남자가 테이프를 쥐어주며 말했다고 했다. 나는 그 노래를 듣고 싶어져서 LP바에 가자고 말했다. 을지로의 몇몇 바를 떠올려 보다가 우리가 있는 곳이 종로 낙원상가 근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뮤직박스와 디제이가 있는 '청춘1번지'. 나는 간판을 보자마자 이 집을 좋아하게 될 거라 확신했고, 확신은 적중했다. 노래방용 미러볼이 요란히 빛나며 어두컴컴한 가게 안 테이블을 이쪽저쪽 비추고, 공간 가장 안쪽에 마련된 앙증맞은 뮤직박스 안에 백발의 디제이가 있는 곳이었다. 번데기탕과 맥주를 주문한 뒤 본격적으로 신청곡을 적었다. M이 유난스레 수줍어하며 건넨 종이를 받아든 디제이는 44년차 경력에 걸맞은 노련한 손놀림으로 LP를 집어들었다. 자, 새로운 테이블의 신청곡입니다. 로라에게 말해주세요, 사랑한다구요.

중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 뒤로 윤 아무개가 녹음했다던 음악이 깔려나왔다.


 

맥주를 일곱 병 마시며 신청곡을 적고 듣고 노래하고 웃는 중간중간, M은 내게 하나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얘, 걱정하지마. 사는 거 별거 없다. 건강하기만 하면 돼. 상황이 이런데 어쩌니. 네 잘못이 아니잖아. 정 힘들면, 정 힘들면 도와줄 수도 있어. 나는 그때까지 한 차례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 카페에서도, 곱창집에서도, 전집에서도 지갑을 연 건 M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 일곱 병과 번데기탕, 그리고 술맛을 돋워준 디제이에게 감사를 담아 보낸 하이네켄 한 병을 계산할 이도 M이었다. 그의 지갑도 내 지갑만큼이나 얇은데. 카페와 곱창집과 전집을 거쳐오는 내내 M은 내 눈치를 봤고 나는 아는 척도 잘하지만 모르는 척도 잘해서 내 눈치를 보는 M을 모르는 척했다. M보다 큰 소리로 깔깔대고 더 크게 노래하고 더 많이 먹었다. 그러나 들킨 것이다. 얘, 우리는 그래도 괜찮다. 도움받는 걸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말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나는 생각했다. 죽고 싶다. M이 또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간 사이 디제이가 말했다. 코로나19로 참, 모두가 참 힘듭니다. 그쵸? 야아.. 이번 곡이야말로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노래인 것 같군요.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릅니다. 브릿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



당신이 무일푼이 되어 거리를 서성일 때도
견디기 힘든 밤이 오더라도 내가 네 편이 될게.
험한 물살 위에 놓인 다리처럼, 내가 다리가 되어줄게.   


   

M의 신청곡이었다. 참 기막히게도 기가 막힌 타이밍이어서 나는 살짝 웃으면서 울었고, 생각했다. 죽고 싶어. 마음속의 달이 꽉 차다 못해 불거져서 터지기 일보 직전일 때 M이 돌아왔다. 참 기막히게도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다행히 운 걸 들키진 않았다.



디제이에게 인사하고 청춘1번지를 나오면서 M이 말했다. 나중에 저런 뮤직박스를 집에 만들 거야. 저런 걸 어떻게 만든단 말야. 할 수 있지, 꿈이야. 디제이는 네가 해. 지하철 개찰구 너머 멀어지는 M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M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 뮤직박스 안에 내가 없을까봐 두렵고, 또 있을까봐 무섭다고.   



M은. 나를 가장 잘 알면서 가장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사람. 내가 가장 잘 알면서 가장 오해하고 있는 사람. 오해를 풀고 싶지 않은 사람.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도움을 구하고 싶지 않은 사람. 험한 물살에 빠져도, 설령 쓸려 죽는대도, 놓이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다리. M은 나의 엄마.



건강하기만 하면 돼. 그 말에 반발심이 들어서, 당장 오늘의 건강을 해치고 싶어져서 지하철역으로부터 발길을 돌렸다. 아까 지나온 인사동 거리를 빠르게 거슬렀다. 하지 못한 말 일부를 흘리며 걸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틀렸어. 잘못했는걸. 똑바로 봐, 나는 또 도망쳤잖아.



끝까지 버티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게, 제가 살던 집이 팔려버려서요, 이사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 된 데다 당시 영국 상황이 최악이었고 회사에서도 어차피 7월 말까진 휴가 처리할 테니 다녀오라고(... ...)



주절주절 말이 많다. 비슷한 질문에 같은 답을 두 달째 구구절절히 한다. 구질구질해. 다 핑계고 변명이다. 나는 그냥 도망쳤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도망은 부끄럽고 도망 온 나는 몹시 부끄러워서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주절주절 말이 많고 말이 많아서 다시 부끄럽다. 엄마의 꿈은 집에 뮤직박스를 만드는 것이고 내 꿈은 부끄러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부끄러워할 줄도 알지만 부끄러운 사람으로 살진 않는 것인데, 그 꿈은 도통 이뤄질 수가 없다. 도망치지 않고 파리에서 끝까지 버텨낸 D가 너무 대단하고 멋있고 부럽다. 나는 D가 파리에 오래오래 살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고 사는 건 버티는 거지. 그래서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허지웅의 에세이 커버 속 글을 오래도록 간직했었다.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찾아 헤맸으며, 찾았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문장을 기억하지 못한다. 창피하다.      



말하자면 나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감각을 강화시키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말이다. 살아 있고 싶도록 깨끗하게 옷을 입고, 살아 있고 싶도록 정갈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살아 있고 싶도록 집 안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했다. 살아 있고 싶도록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었고, 살아 있고 싶도록 나를 먼 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유진목, 「디스옥타비아」 中     



그러고 집에 잘 있던 J를 서촌까지 불러 위스키를 두 잔, 소주를 두어 병 더 마셨던가. 전날 밤의 폭음은 극심한 두통을 남겼다. 머리를 감싸 쥔 채 괴로워하다 정오가 지나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물 석 잔을 연거푸 마시고 이를 닦으려 거울 앞에 섰다. 퉁퉁 불어있다. 볼썽사납기도 하지. 이 못생긴 입으로 어젯밤엔 또 무슨 말을 지껄였을까. 이건 비밀인데 나는 술을 마시는 나를 아주 미워한다. 매일 술을 마시니까 매일 나를 미워하는 셈이다. 이를 닦으며 미움에서 연민을 긁어낸다. 매번 긁어내도 매번 남아있더라고. 샤워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개고 빨래를 널었다. 마음속 달은 여전히 꽉 차 있지만, 그렇지만. 당분간은 어떻게든 살아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나를 깔끔한 사람이라 오해하는데, 실은 살아 있고 싶어서 그랬다. 살아 있고 싶도록 깨끗하게 옷을 입고, 살아 있고 싶도록 이부자리를 정갈하게 정리하고, 살아 있고 싶도록 내가 놓인 공간을 청소했다. 살아 있고 싶어서 가만히 있질 못하고 배낭을 멨다. 런던에 간 것도, 살아 있고 싶어서. 살아 있고 싶어서 그랬는데.



가만히 누워 있는 새 저녁이다. 열어둔 창문 바깥으로부터 냄새가 불어온다. 여름 냄새. 여름 얘는 죽지도 않고 기어코 다시 왔네. 신열을 앓으며 보냈던 지난 몇 번의 여름들을 떠올리다 눈을 감는다. 이번엔 얼마나 걸릴까, 마음속 달이 가늘어지려면.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이번 가을에도 살아 있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