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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Mar 04. 2016

불량엄마 일기 #2

워킹맘의 비애 2

자, 그럼 말안듣는 내새끼와 그 소세지빵같은 새끼는 어떻게 할 것인가.
거의 일년간 최악의 시나리오를 거의 매일 겪으면서 터득한 나의 해결책은 아래와 같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책이다. 

일단 저녁 만들어줄 시간이 있으면(워킹맘이 그럴 시간이 있기도 힘들지만) 그냥 대충 먹여도 된다. 솔직히 말해서 유기농에 맛있으면서 고단백에 저칼로리 음식이 어딨냐. 닭고기 샐러드가 맛있냐, 치킨이 맛있냐의 이미 답이 정해진 싸움인 것이다. 어른 입에도 별로면, 애 입에도 별로다. 그냥 좋아하는 거 줘도 된다. 김, 계란 이런거 주고, 아주 가끔 냉동음식 같은거 주고 그래도 된다. 그러다 주말에 시간 있을 때 못다한 유기농 재료 팍팍 써서 몇끼 잘 만들어 주면 되지. 어짜피 애들은 어린이집에서 영양사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영양가득한 밥을 친구들과 경쟁하며 많이 먹고 오니까. 애들은 배고프면 먹게 되어있으니까 밥에 집착 안해도 된다. 밥밥 거리면서 쫒아다니면서 먹이니까 배가 안고프고, 안고프니까 밥맛도 없는거다. 시장이 반찬이다.

내 미안함을 음식만들기로 풀면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아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자기 위안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한동안 떨어져있던 엄마아빠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거지, 맛도 그저그런 밥을 억지로 먹고 싶은게 아니다. 밥을 대충 먹더라도 엄마랑 뽀뽀 한번 더 하고 그림 한번 더 그리고 싶어한다. 적어도 내 딸은 그랬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싶다고 운적은 없지만, 내가 안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울었다. 한번은 너무 울다가, 그깟 밥이 뭐라고 안아주지 않는 엄마에게 분해서 토하다가 몸살이 나서 일주일을 앓아 누우셨다.
이 자기위안이 무서운게 뭐냐면, 이 행동은 어렸을 적 엄마에게 들었던 그 명대사, "다 이게 너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 "너 위해서 하는거야."를 경솔하게 실행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상, 나 잘되는 거라고 믿어오며 살아온 20여년이 진짜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나 잘되라고 하는 것' 속에 '나'는 없었다. 그저, 소위 말해 잘되는 것에 가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하고싶은지 생각해본적도 없었던 것 같다. 자아찾기 문제는 뭐 평생의 문제이긴 하지만, 보통 대학의 졸업과 동시에 아주 엄청나게 큰 문제로 다가오는데 이때 대다수의 고민이 뭐냐면 '나는 내가 뭘 하고싶은 지 모르겠다' 이다. 이 문제는 보통 취업와 각종 대소사에 치여 또 어물쩡 넘어가게 되는데, 육아라는 큰 산을 만나면 더 큰 짐으로 다가오게 된다. 너무 많이 갔네 -_- 암튼, 지금 하는 이 행동이 진짜 '아이' 를 위해 하는 건지, 아님 '나' 좋자고 하는건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다음으로, 소세지빵.
문제의 소세지빵 새끼.
그 답도 없는 놈.
근데 알고보면 그놈은 진짜 불쌍한 놈이다.
그놈도 나와 같이 힘들게 출근하고 회사가서 욕먹고 축처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와 답도 없는 미래와 인생을 고민하며 퇴근 후 누워서 잠시잠깐 핸드폰을 휴식처로 생각한거다. 나와 조금 다른 점은, 보통의 그놈들은 '전업주부'를 옵션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이 상태가 최후의 보루이며 막다른 길이다(물론 아닌사람도 있겠지). 내가 여자처럼 살아야한다는 것과 비등하게 얘는 그렇게 남자처럼 살아야한다고 교육받아져 왔으므로 나와 똑같이 불쌍한 놈이다(물론 이것도 아닌 사람이 있겠지). 어쨌든 그놈은 스트레스를 술 아니면  게임으로 푸는 무미건조하며 단조로운 놈이기 때문에 지금 술도 게임도 못하니 그저 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휴대폰이라는 돌파구로 잠시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 걔나 나나 불쌍한건 쌤쌤이라고 쳐도, 왜 그놈은 누워서 쳐 놀고있고, 나는 이렇게 쌔빠지게 고생을 하는가. 왜냐면 육아와 가사에 있어서 나와 그놈의 기대치가 다르다. 그놈은 애가 좀 밥좀 안먹고 대충 놀다가 뽀로로 한시간정도 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집좀 어질러져 있어도 괜찮다, 죽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따지고 보면 맞다.
우리집에는 쾌락의 시간이라는게 있는데, 밥먹고 한시간정도 자신의 쾌락을 불태우는 시간을 갖는다. 딸은 그토록 보고싶던 뽀로로를 보고 나는 드라마를 보고 남편은 게임을 한다. 보통 이 쾌락의 시간은 집에서 정한 아이의 미디어 노출시간 정도로 하면 되는데 우리집은 보통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다. 이 시간에는 남편은 게이머, 나는 소세지빵, 딸은 뽀로로녀가 된다. 주말에는 좀 더 길게 할 때도 있다. 다들 좀 쉬어야 하니까 ㅎㅎㅎ

자, 그럼 아이와 눈맞추고 대화할 시간도 없는데 아이의 정서적 교감과 유대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나는 그 답을 목욕에서 찾는다. 보통 아이의 목욕은 '시키는 것' 이라고 생각하지만 욕조가 있는 집에서는 '같이'해도 된다. 나와 딸은 '목욕 노래 리스트' 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자이언티 노래를 위주로 듣는다. (혼동아는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목욕할 때 듣는 노래라며 길에서 나오면 신기해 한다) 왜냐면 출퇴근길에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폴리랑 타요를 위주로 들으니 이시간에는 내가 좋나하는 걸 좀 들어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목욕할 때는 휴대폰도 못하니 온전히 아이와 눈을 맞추며 목욕탕에서 소꼽놀이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도 듣고 숫자놀이도 하고 그런다. 그래서 보통 목욕하는데 우리는 한 한시간정도 걸린다. 동아와 내가 목욕하는 이유는 동아가 아빠랑 목욕하는 걸 이제 안좋아하는 언니야가 되었기 때문인데, 그럴때는 우리의 소세지빵이 심심해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시간동안 밥먹은거 정리하고 장난감 같은걸 청소하라고 퀘스트를 주면 된다.
(물론 이것도 소세지빵이 일찍 들어올때나 가능하며 맨날 회식과 야근을 밥먹듯이 하기때문에 이루어질 확률이 낮다. 그럴때는 일단 집안 나 혼자 있을 때가 많은데 그 해결법은 나중에...이미 너무 많이써서 내가 다 지치려고 함)

함께 하는 목욕이 끝나면 이제는 재워야 한다. 목욕의 장점은, 물놀이이기 때문에 지쳐서 빨리 잠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눈이 감기려는 틈에 수면마취책, 잠자는 토끼를 읽고 재운다. 이때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고 하더라도 너무 괴로워하면 안된다. 엄마토끼가 말했지, 이야기가 끝내기 전에 자도 된다고 ㅎㅎㅎ
강인한 정신력으로 기력을 회복하여 일어났다면, 집안일은 왠만큼 더럽지 않으면 하지 말자. 어짜피 소세지빵이 대충 치웠으므로 마음에는 안들지만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그 시간에 만에 하나 소시지빵이 안자고 버티고 있다면 소시지빵과 맥주한잔 하며 요새 힘든일이 뭔지 사는게 뭐가 고민인지 나의 상사 그새끼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서로 얘기하는게 낫다. 그리고 힘내라고 다독여주는 시간을 갖는다. 그마저도 하기 귀찮다면, 그냥 누워서 나의 시간을 갖는데 일기써도 되고 책읽어도 되고 드라마를 봐도 되고 영화를 봐도 된다. 보통 나는 책을 읽기 싫어서 영화를 보는걸 추천하는데, 야한거 말고 스토리가 있는 영화를 보는걸 추천한다. 왜냐면 그냥 야한거만 보면 끝이 공허하다 ㅋㅋㅋ 그리고 그년의 SNS에는 왠만하면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자마자 후회한다. 걔도 세상사 고민이 많겠지만, 절대 자기 힘든얘기를 나 보라고 쓰지 않는다. 어느집이나 블랙홀이 하나씩 있으니까 걔네집도 블랙홀이 하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도 위안이 된다. 잘 생각해보면 나도 나 잘난얘기만 자랑하지, 나 안되는 말은 잘 주절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보면 피곤해서 걔 피드도 인스타그램도 별로 눈에 안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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