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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Mar 04. 2016

불량엄마 일기 #3

독박육아에 대처하는 법

사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는 (어언 3년 전이긴 하지만) 대충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나에게는 회식이 두가지로 구분되었는데 그것은 '필수 회식'과 '선택 회식'이었다. '필수 회식'이라 함은 팀원 전원이 모여서 하는 회식으로, 한 일주일이나 이주일 전 쯤에 약속을 잡고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회식이었다. '선택 회식'은 팀원 몇명만 모여서 함께 술자리를 같은 일종의 번개인데, 이건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었다.
나는 보통 선택회식은 회식으로 쳐주지도 않아서 나에게 회식이라 함은 한달에 많아야 두세번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큰 회사로 이직하고서부터 그딴거는 다 집어치우고 필수 회식도 회식, 선택 회식도 회식, 세명도 회식, 두명도 회식, ㅅㅂ 다 회식이었다. 회식을 안하면 보통 야근을 했는데, 그럼 야근하고 나서는 집에 기어들어와야지, 야근을 하면 또 끝나고 한잔 한대.
가끔 친구도 만난대. 그럼 평일에는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럼 처음에는 그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몸 상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또 단전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얼굴만 봐도 화딱지가 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왜냐면 나는 매사에 아이건 부모님이건 매번 미안해하고 아둥바둥 사는데, 저자식은 내가 보기에는 안가도 되는 회식까지 가며 잘 놀고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도 잘 못만나는데!!
그리고 나는 뭐 생각해보면 딱히 잘못한것도 없는것 같은데(퇴근하고 곧바로 제정신으로 들어왔음에도!!)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봐주신 엄마나 시어머니께 죄송합니다~~~ 아이에게도 미안합니다~~~ 하고 굽신굽신 거리면서 머리를 조아려대며 집에 들어오는데!!!
집에 돌아오면 나도 쉬는가?
그것도 아니지.
엄마나 어머님께 바이바이하고 애 씻기고, 재우고, 그러다가 나도 같이 잠들어서 씻지도 못하고 자는게 부지기수인데!!!
한편으론 차라리 밖에서 밥먹고 늦게 들어오는게 오히려 몸은 편할 때도 많았다.
그치만 자고있는 아이를 보면 또 미안한 마음이 들고(대체 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사나 싶었다.

그럼, 독박육아를 그나마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의 경우, 독박육아의 질은 아이가 24개월이 지났느냐, 안지났느냐에 따라 달랐다.
(아직 애가 32개월이어서 그 이후는 잘 모름 ㅎㅎ)
왜냐면 24개월이 지나면 아이밥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이 어른들꺼 같이 먹어도 되고 말귀도 제법 알아듣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상황인가.

암튼, 24개월 전 독박육아의 경우 사실 정말 힘들었다.
나는 사실 사업을 하는지라 회사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야하는 워킹맘과는 조금 다른데 (대신 정해진 월급이 없지 하핫 ㅎㅎ)
일하는데 정해진 시간이 없는 대신, 출근시간이 좀 자유롭다.
30개월 전까지는 아이가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아서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셨는데, 보통 오전11시~12시 사이에 와주셨다.
그럼 나는 아침에는 남편 밥할 시간까지는 없으니까, 8시쯤 일어나서 아침밥, 정확히 말하면 아이의 아침밥을 만들고
아이가 일어나면 쫒아다니면서 밥을 먹이고, 세수를 하고, 점심과 저녁 반찬거리를 만들어놓고, 어머님이 오시면 그제야 씻고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일은 뭐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저녁 시간이 약간 지나서 돌아와서 목욕을 시키고 자라고 쫒아다니다가 잠을 자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수면교육을 못시킨 멍청이 엄마이므로 밤에 두세번은 깼다.
정말 이때는 너무 피곤했는데, 이유식/유아식할 육수도 미리 끓여놔야하고, 채소도 먹기 좋게 다져놓아야 하고, 또 점심 저녁 찬거리도 해야하는데 집은 더러워서 청소도 해야했다.
만약 엄마도 시어머님도 안도와주시는 진짜 독박육아의 날은 정말 힘들었는데, 누군가 말할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정신이 다 혼미해졌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얼굴만 디밀고 피곤해 지쳐 쓰러질 때면 정말 화가났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다가 애를 깨우면 진짜 분노가 치밀었다.
그래서 얼굴을 볼 수 있을 때는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켜댔고, 남편은 일을 일부러 시킨다고 화내서 싸움이 시작됐다.
아, 진짜 다시 생각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다.

암튼, 상황이 암울했는지라 살기 위해서는 이 독박육아에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몇가지 대안이 있어야 했다.
뭐, 완전히 분노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원래 사는게 다 그러하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흘려보내야한다.

일단, 독박육아에 지칠때는 그냥 도움을 구했다.
태생이 뻔뻔한 나에게도 늘상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딱 두명있었는데, 그게 엄마와 아이였다.
사실 시어머님께도 아이를 맡기는 것도 미안하긴 했지만, 시어머님은 원체 쿨한 성격이시라서 몸이 힘들면 쉬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약속이 있으면 있다고 말씀하셔서 몸을 혹사시키면서 아이를 돌보시지는 않으시리라는 안도감(?) 같은게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아이를 부탁드릴 때면 약속이 있으면 취소하고, 내몸 부서져라 일하면서, 차로 40분 거리의 친정을 운전해 다니셨다.
(물론 늦게 오면 화는 내셨지만 ;;ㅎㅎ)
암튼 엄마는 나의 엄마라는 죄로 왜 늦게 집에 늦게 가야하는지, 애는 왜 열심히 봐야하는지, 집은 또 왜이렇게 깔끔하게 치워놓으셨는지 화가나면서 자연스럽게 분풀이의 대상은 남편이 되었다.
아이는 또 어떤가. 이 못난 엄마를 만나서 맨날 붙어있고 싶은 엄마와 있지도 못하는데 얼굴 보면 맨날 피곤하다고 뒹굴거리기만 하다니.
그런데 예전에도 말했던 이 '미안함'의 에너지가 얼마나 사람을 갉아먹는지 일도 육아도 가사도 사랑도 다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해지기로 했다.
이 마음을 가지기까지 나는 어언 2년의 시간이 걸리긴 하였으나(!) 아직도 부던히 노력하고 있긴 하나(!) 미안해서 굽신거리지 않기로 했다.
사람이 다 사는게 힘들고 그러면 돕고 사는거지, 어떻게 나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겠는가.
그래서 힘들면 시어머님께도 부탁드리고, 엄마에게도 부탁드리고 그냥 다 부탁드렸다.
왜냐면, 나는 일도 하고 육아도 하니까 지칠 수밖에 없다. 나도 사람인데.
나도 나중에 내 애가 나에게 SOS를 치면 달려가겠다는 내리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여기서 포인트는, 아이를 맡기면 주저없이 나가서 쉬던가 아니면 문을 닫고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동안은 나와 양가 부모님과의 육아관이 나와 달라서 잘 쉬지도 못했는데, 이것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의 지론은, "같이 있는 사람이 엄마" 이다.
그 때 동아를 돌봐주는 사람이 아이의 엄마이고, 내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절대 도움을 못 구하므로 그냥 마음에 안들어도 꾹 참고 있어야 한다. 사람은 다 사람마다 장점이 있는지라, 내가 못하는 다른 부분에서 잘하시는 부분이 있다.
암튼 그래서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면 하고싶은 것을 해야한다.
나의 경우에는 평일에 한번 정도도 약속을 잡고 조금 늦게 들어갔는데, 보통 나는 친구와 술을 마시거나 술을 마셨다 ㅋㅋㅋㅋ
(뭐 이런 주정뱅이같은 멘트가 다있지 -_-;;)
암튼, 나의 육아스트레스의 기저에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욕망이 가득한데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음주가무로 그 욕망을 풀어줘야 했다.
아이를 맡기기도 힘들 때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다.
아이가 있는 친구면 더 좋고, 없는 친구도 좋다.
다만, 아주 친해서 편한 친구들을 불러야 서로가 편하다.
밥도 시켜먹고(해먹으면 힘드니까), 술도 먹고, 노래도 틀어놓고 놀다가 친구들이 애도 좀 봐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어줘야한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화가 누그러진다.

또 독박육아가 많을 때에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이 좋다.
보통 '가사'와 '육아'가 마치 하나의 일인양 혼동되는데, 빨래와 청소는 육아와 별개로 진짜 많다.
그래서 사실 육아에 지칠 때 가사까지 잘 해내기란 힘들기 때문에 가사도우미를 꼭 고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절대 돈이 많지 않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잘 쓰지도 못하는 인간이지만, 이때는 돈을 써야만 했다.
나의 경우는 너무 힘들 때는 일주일에 1-2번 정도 정기적으로 도움을 구했고 그때는 한달에 20-40만원 정도의 거금이 지출되기는 했다.
(지금은 사실 너무 비싸서 안하고 있다. 돈을 많이 벌면 다시 할 생각이다.)
24개월 전까지는 아이가 청소에 참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청소와 빨래는 오롯이 부모의 몫이 되는데
이 돈을 아끼겠다고 남편과 집안일 전쟁까지 치루면 진짜 정신적으로 녹초가 된다.
암튼 아이가 어릴 때는 가사도우미의 손길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한번이 많으면 이주일에 한번도 좋다.
그저, 집이 무척 깨끗해지는 날이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있고, 그 일주일을 기반으로 대충 대충 치우고 미루다 보면 어느새 그분이 오시는 영광 가득한 날이 오기 때문이다.
그럼 이 돈은 어디서 아껴야 하느냐.
바로바로 아이에게 들어가는 쓸데없는 옷, 장난감, 그리고 책이다.
나의 경우는 아이에게 들어가는 옷들을 거의 안사고 얻어입혔는데, 어릴 때는 어짜피 옷은 토와 음식범벅인지라 외출할 때 입을 옷 몇개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의 숨겨둔 코디욕을 이 비루한 몸뚱이가 받쳐주지 못함으로써 얻는 슬픔을 아이를 통해 대리만족 느끼는 그 비싼 취미를 그만두면 꽤 많이 아껴진다.
또, 쓸데없이 집을 어지르는데 한몫하고 있는 '국민' 어쩌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그 무수한 장난감들도 내 딸은 그저 빨아먹는데만 썼다. 잘 보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꽤나 명확한데, 내 딸의 경우에는 그림그리기와 퍼즐맞추기였다.
( 그 외에는 락앤락통에 이상한 쓰레기를 넣어두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_- )
좋아하는 것 위주로 조금씩 사주어도 아이는 전혀 지루해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책.
이 책이 진짜 문제인데, 진짜 애들에게 재미없는 책이 너무 많다.
아이에게 재미없는 책은 어른에게도 재미가 없다.
어릴 때는 한달에 한두권 내가 봐도 재밌는 책들을 반복해서 읽어주는게 좋다(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ㅎㅎㅎ).
급기야 내 딸은 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암튼, 요는 진짜 독박으로 혼자하는 육아를 하지 말라는 거다.
진짜 독박쓰면 인생이 우울해지니까, 부모님께, 친구에게, 가사도우미에게 도움을 청해 조금이라도 숨쉴 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 남편. 남편은 사실 도움을 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양육하는 존재이므로 일정을 잘 조율해서 해야하는게 맞다.
(사실, 적어도 제때 퇴근하고 제때 출근하는건 국가와 기업이 지켜줘야하는게 맞지만)
내가 죽을 거 같으면 그가 좀 더 하고, 그가 죽을 거 같으면 내가 좀 더하고.
만약 남편이 진짜 남의 편처럼 나쁜맘 먹고 계속 일부러 육아에서 빠지려고 한다면, 소처럼 일하고 집안에서 은따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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