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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Mar 04. 2016

불량엄마 일기 #4

일인가 아이인가의 기로에서

임신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일과 육아의 선택에 기로에 섰을 때 나는 당연히 육아를 선택하리라 믿어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임신 중에 나는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나의 비지니스를 막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임신 안정기였을 때 나는 인생의 모든걸 다 이룬듯한 착각에 빠져 살았다. 사업은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점점 더 성장해갔고, 대학원은 올 A를 받았으며(대학원에서 B를 준다는 것을 나가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음), 게다가 아이까지 있지 않은가! 임신을 해서 몸이 조금이라도 안좋으면 바로바로 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모두가 나를 떠받들었으며 제사와 명절과 각종 행사와 모임에 빠져도 모두 용서가 됐다.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왕자리에 앉았고, 남편은 언제 어디서나 천리길을 마다하고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나에게 달려왔다.

이 행복에 근원에 바로 내 아이가 있었다. 나와 매일 교감하는 내새끼.

만약, 일과 아이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면 나는 당연히 아이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면 일하는 거는 좀 빡칠 때도 있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고 한없이 낙담할 때도 있지만,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 완벽하게 사랑스럽고 같이 있으면 행복하지 않은가!!만약, 그 작고 소중한 생명체가 나를 원한다면 내 아무리 내 일을 좋아한다고 해도 일 따위는 뒤로하고 아이에게 달려가겠노라 다짐했다. 게다가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핑계꺼리이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를 낳고보니 육아가 생각만큼 호락호락한게 아니었다.
일단 병원에서 나오고나서부터 정말 24시간 그녀를 보좌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종일관 죄인이었다.
모유가 안나오는 것도 내 죄요, 모유도 안나오는 주제에 분유 온도도 잘 못맞추는 것도 내 죄요, 오줌을 쌌는데 기저귀를 빨리 못가는 것도 내 죄요, 잠자기 전에 두시간동인 이유도 없이 우는 것도 다 내 큰 죄이로소이다.
정말 12개월전까지는 육체의 피로도 말도 못하게 쌓였지만, 정신적인 피로도 컸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다보니, 다 내 잘못만 같았고, 이 잘못으로 인해 아이의 성장에 엄청난 해를 끼치는 것만 같았다. 블로그에 올린 무엇이든 다 잘하는 다른 엄마들의 삐까뻔쩍한 일상을 보면 정말 구운 오징어처럼 나의 자존감은 쪼글아들었다.

12개월이 지나자 이제 세끼 다른 반찬으로 이유식과 유아식을 시작해야 했고, 아이는 여전히 밤에 잠을 깊게 자지 않았다. 밤잠을 설친 나는 또 삼시세끼를 만들어야 했고 내 밥먹을 시간은 없는데 나는 왜때문에 살은 계속 쪄갔다.
게다가 규모를 늘려 시작한 사업은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먹었고, 새로운 사업은 매일매일 생각지도 않았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일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일도 육아도 둘다 못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불행은 연달아오는 것이라고 했던가. 집안에 큰 일이 있었고, 몸은 허구헌날 아팠다. 건강의 상징이었던 내가. 감기는 걸리지도 않던 내가.

그냥 다 정리하고 육아에 전념하자고 생각했다. 그나마 나는 애는 좀 잘보니까. 일도 그저그렇게, 육아도 그저그렇게 할 바에는 그냥 아이에게 올인하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문득, 엄마가 생각났다.
자식이 전부인양 살아오신 우리엄마. 자식에게 집착도 하고, 대리만족도 느끼고, 희생도 하고, 고생도 한 엄마. 이제는 자식새끼들 다 키워놓고 매일밤 외롭게 아빠와 자식을 기다리는 우리 엄마.
예전에 잠시 일할때 엄마는 몹시 지쳐보였만, 늘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일하지 않는 지금의 엄마는 관리의 김여사님이시기 때문에 여전히 몹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시기는 하시나, 예전의 생기는 잃은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예전의 엄마처럼 생기있게 살기로 다짐했다. 육아가 나의 목표와 목적이 되는 순간, 아이에게 집착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성공의 잣대는 바로 아이가 되니까.
그렇다고 아이를 키우기로 큰 결심을 한 다른 전업주부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마다 각자 의견이 다르고 그 최선의 결정을 한 이유도 다르니까. 요는, '내'가 전업주부가 된다면 그럴 것 같다는 것이다.

암튼,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갖게 된 나의 육아의 첫번째 목표는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절대 나의 대리인을 삼지 말자는 것이었다. 내가 전업주부가 된다면 나의 가장 큰 육아 원칙이 무너지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일과 육아를 어떻게 잘 조율할 것인가.
지금의 결론은, 나에게 관대해지자는 것이다.
일과 육아 둘다 그저 그렇게 못해도 된다. 다만, 내가 못해도 되는 것에 대해 관대해지고 당당해지고 조금 더 행복해지자고 생각했다. 세상에 모든일을 어떻게 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겠나. 모든 것은 다 주기가 있으니, 어떨땐 빨리하고 어떨땐 좀 느리게 하고 그래야지. 그래야 살지. 이번주에 일을 조금 못하면 미안한 마음에 다음주에는 좀 더 열심히 하면 되고, 이번주에 아이와 잘 못놀아주었으면 다음주에 잘 놀아주면 되는걸로 적당히 적당히 견디면 된다. 사실, 30대 초반의 나이라 일도 중요하고, 36개월 이하의 아이에겐 엄마의 존재도 중요하다. 둘다 중요한 시기이니 둘다 조금씩 양보하며 견디고, 견디다보면 익숙해지고 능숙해지고 나아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평안하고 행복하게 천천히 살기로 했다.

인생은 길고, 나는 아직 30대에 머물러 있으니까. 내 아이가 7살이 되면, 나는 이제 아이를 그저 지켜봐주는 걸로 지금보다 한발짝 떨어져야 하는 시기가 올테다. 지금 모든걸 포기하고 아이에게 매달렸다가는, 그때가서는 일을 다시 하기에 너무 늦었거나, 아니면 아이에게 떨어져야 함을 스스로 부정할 수도 있으니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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