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오랫만에 돌아온, 불량엄마 일기 #5
참으로 오랫만에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유인즉슨 4년만에 처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휴가를 가기 전에는 두근대느라 글을 못쓰고, 휴가를
다녀온 이후에는 여행 후유증으로 못썼다.
(변명도 가지가지이지 ㅎㅎ)
암튼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휴가.
때는 바야흐로 2014년.
나의 사랑스러운 딸이 18개월 되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를 임신하고 2년간 여행을 못떠난 남편과 나는 과감하게 아이와 함께하는 제주도 2박3일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그때는 그녀가 유아식으로 전환했으며, 걸을 수도 있었으며, 공짜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기이므로 여행의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뭐든 쉽게 먹일 수 있는 것이 없으며, 한시도 눈을 떼지않고 붙잡으러 다녀야 하며, 비행기에서 눈치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의 동의어임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녀와의 여행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었다.
일단 짐을 쌀 때부터 생각 자체가 안일했다.
오전11시 비행기를 타야함에도 전날 짐을 싸놓지 않는 방탕하고 대범한 여행습관 덕분에, 그녀의 엄마와 아빠는 쌀쌀한 날씨를 대비한 긴옷, 세면도구, 수영복과 칫솔 중 어느 하나도 준비하지 못했다. 오로지 팬티 두장과 반바지와 원피스 하나, 분신같은 아이패드와 충전기만을 챙겼다. 대신 그 자리는 그녀를 위한 초대형 튜브와 수영복 4개, 갑자기 이 여름에 한파가 몰아쳐도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주일치 옷과 양말, 칫솔 두개와 치약, 온몸을 둘러도 남을 것 같은 가제수건과 물티슈, 기저귀를 준비했다.
부랴부랴 짐과 아이를 챙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딸은 피곤했고, 첫 비행에서는 얌전히 잠을 잤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이 여행이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것이라 착각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제주도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장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비를 뚫고, 아이의 짐을 들고 렌터카를 타고 호텔로 갔다. 이 호텔로 말할 것 같으면, 지인찬스를 전혀 쓸수 없어 비싸기는 오지게 비싸서 30평생 자본적은 단 하루도 없는 호텔로서, 오로지 아이와 함께 수영하기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수기에 거금을 들여 예약한 호텔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잠깐 해가 났으므로, 우리는 그 빛나는 수영장에 가기위해 수영복으로 재빨리 갈아입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수영복은 보이지 않았다. 왜냐면 아이 수영복 3개를 챙기느라 생각조차 않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또 그 비싼 호텔 샵에 들어가서 평소에는 입지도 않을 프릴 수영복을 거금을 들여 산 후 캐리어의 반을 차지한 대형 튜브를 들고 수영장으로 갔다.
그런데 아뿔싸.
한가지 간과한 사실.
그것은 바로, 나의 소중한 딸이 물놀이를 싫어할 것이라는 사실_
목욕도 좋아했는데...
어렸을적 목욕탕에서 하는 링튜브도 좋아했는데...
수영장에 들어가자마자 내 딸은 엄마를 외쳐대며 나가자고 했고, 자리를 잡은지 30분 만에 우리는 10키로가 넘는 딸과 과하게 바람을 넣어 터져버린 대형튜브를 안고 쓸쓸히 귀가했다.
그 이후에 뭘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여행만 가면 술을 달고 살았던 우리 부부는 하루에 둘이서 맥주 1캔을 채 마시지도 못했던 것과 엄청 큰 아쿠아리움을 10키로가 넘는 애를 안고 돌아다녔던 것을 기억한다. 또, 비가 계속 와서 해변을 나가보지도 못했던 것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울면서 돌아다니는 딸을 쫒아다녔던 것도 기억한다.
여행 내내 나시티 두벌로 버텼던 우리부부는 여행 중 목감기가 걸렸고, 우리와 함께 북상한 장마전선과 지독히도 독했던 몸살을 3일간 앓고 행복한 첫 여름휴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여행 이후, 우리는 적어도 아이가 5살이 되기 전까지는 다같이 가는 여행은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저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1박2일 여행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해.
남편은 홀로 여행을 가겠노라 선언했다.
그를 보내주면서 내년에는 내가 가겠노라고 딜을 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소중하지만 함께하는 여행은 무리라는 것을.
다른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전혀 힐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각자 하는 여행이었다.
혹자는 불륜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10년지기 동지애가 있지 않은가!! ㅎㅎㅎ
그리고 올해.
내 차례가 되었다.
일주일동안 서핑으로 심신을 단련한 나의 실력은 예나 지금이나 형편없긴 마찮가지지만, 그래도 혼자하는 여행이 꽤나 즐거웠다.
대학때도 잘 이용하지 않는 도미토리 숙소에서 어린친구들과 꼭두새벽부터 서핑을 갔고, 숙소로 돌아와 지상훈련을 마치고서는 쇼핑을 하거나 그 핫하다는 비치클럽을 돌아다녔다. 당연히 어느 누구하나 나좋다는 남자는 없었지만,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계획한다는 기쁨과 졸리면 자고 피곤하면 눕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앞으로는 혼자 갈 생각은 없다.
사실 좀 외롭기도 했고, 이제 그녀는 기저귀도 안차는 4살 언니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