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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당동붓다 Jun 09. 2020

나를 아끼는 방법

얼마 전, '인턴'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너무 재밌게 본 영화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가 있다. 로버트 드니로가 퇴근 후에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예쁜 테이블 매트를 깔고 예쁜 접시 위에 로스트 치킨과 샐러드를 준비하면서 와인 한잔 또로로 따르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의 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그날 저녁은 치킨 샐러드를 먹었다. 영화 속 로버트 드니로는 기품 있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아끼던지, 매일 정장을 입고, 침대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예쁜 접시에 밥을 차리고,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마음을 다해 아껴주었다.


딸아이가 4살이 되던 해였던 것 같다. 나는 매일매일이 너무 지치고 짜증 났다. 잠자리 독립을 못해서 그런지, 원래 예민한 건지 아이는 늘 밤에 두세 번씩 깨서 나를 찾았다. 저녁에 갑자기 깨면 마땅히 할 것도 없어서 페이스북에 연속으로 나오는 동영상 짤들을 보다 잠이 들었다. 밤에 못 자니 낮에 피곤해서 일도 제대로 못했고,  가끔 낮잠을 잤고, 그러다 보니 밤에는 또 말똥말똥해져서 인스타그램으로 남을 염탐하다가, 작은 화면을 쳐다보다 눈이 아파 잠이 들었다. 스트레스는 밥과 술로 풀었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주 토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지금은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운동도 못하고 살이 찌는 거라며 한탄하며 괜히 남편 탓을 했다.


그러다 우연하게 서핑을 하게 되었다. 남들처럼 멋지게 서핑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잘 일어서지도 못했지만 나는 그 넓은 바다에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힘을 쓰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다음날 느끼는 근육통이 너무 행복했다. 가끔 일요일 하루 나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새벽 5시에 버스를 타고 동해에 도착해 3-4시간 서핑을 하고 저녁 8시 버스를 타고 12시에 집에 도착했다. 새빨갛게 탄 다리와 어깨가 마치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훈장 같았다. 등과 팔 힘을 기르기 위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서핑 책을 찾아 읽고, 결혼기념일 선물로는 카버 보드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혼자서 20대 친구들이 지내는 한인 서핑스쿨에서 일주일 동안 2층 침대의 한 칸을 쓰며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서핑을 했다. 아쉽게도 나의 서핑 사랑은 1년을 넘지 못했고, 여전히 살집이 있으며, 여전히 서핑을 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서핑을 계기로 나는 '나를 아끼는 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 소중한 나의 인생인데, 왜 나는 유튜브에 하루 종일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 마냥 귀찮다고 핸드폰 앞에 나를 방치하는가.


그 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실행하기로 했다. 노래를 크게 틀고 밤에 운전하는 것, 동아와 아쿠아리움을 가는 것,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번 친구를 만나는 것, 하얀 침대보에서 발을 꼼지락 대는 것, 내 몸을 정성스레 마사지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운동을 하는 것,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


 그래서 최근 몇 년부터 나는 끼니를 때우지 않고 소중하게 챙긴다. 오직 나를 위해 가장 예쁜 그릇을 꺼내 예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예전에 시어머니가 네가 엄마니까 애가 먹다 남은 음식을 먹으라고 했을 때 나는 정말 밥상을 엎어버릴 뻔했다. 남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먹는 행위는, 엄마이기 이전에 나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어서 되도록이면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게 나를 아끼는 방법이다.


내가 나를 가장 소중히 아껴야, 내 아이도 온전히 아껴줄 수 있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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